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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보우와 한양천도

The Capital Relocation of Taego-bowoo, a Buddhist monk of the late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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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는 고려시대 천도와 관련된 불교계 고승의 국가비보사상을 중심으로 공민왕대 보우의 한양 천도 주장을 고찰한 연구이다. 도선의 국가비보사상은 개경을 국도로 정하는데 기본 이념이 되었으며, 如哲과, 能兢 등 고승에게 계승되었다. 여철은 삼각산 사찰에 포교하면서 남경을 부각하였으며, 대각국사 의천도 남경으로의 천도를 제기하였다. 무신 집권초 강화 국도에서 도선과 문도 여철 등의 국가비보사상이 다시 강조되었으며, 개경 주변의 읍에 三蘇를 설정하여 국도 개경의 위상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그 후 불교계를 중심으로 阿斯達 信仰을 바탕으로 한 남경 천도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남경이 左蘇로 지정되었다. 원 간섭기에 이르러 개경이 국도로 환원되었지만 반도 남단의 순천의 수선사계 고승들과, 특히 강진의 백련사계 無畏國統 丁午와 眞靜國師 天頙은 국가비보사상의 운용을 내세웠으나 천도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원 간섭기말 수선사 사주였던 覺眞國師 復丘는 국가비보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할 것을 제기하였으며, 그의 문도인 竹磵 宏演 등도 국가비보사상을 내세웠으나 역시 천도를 주장하지 않았다. 공민왕의 왕사 태고 보우는 한양의 진산인 삼각산과 근기지방인 양평 용문사에서 흥법 운동을 펴면서 한양천도를 주장하였지만 화엄종계 辛旽의 忠州 천도설 등이 제기되면서 저지되었다. 보우의 한양 천도 주장은 조선 건국초 무학 자초에 의해 漢陽奠都로 결실을 맺게 된다.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that examined the claim that Hanyang of Buddhist monk Bowoo should be capitalized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focusing on the idea of protecting the state of Buddhist monks involved in the relocation of the national capital during the Goryeo Dynasty. The Buddhist monk Doseon's idea of protecting the nation has become a basic ideology in deciding Gaesong as the capital of Goryeo. He was succeeded by his disciples, Buddhist monk Yeocheol and monk Neungeung. The Buddhist monk Yeocheol highlighted the Namgyung(Hanyang) while he was at the center of a Buddhist temple located in Samgaksan Mountain in Seoul. After that, Uicheon, a Buddhist monk, also proposed moving the capital to Namgyung. In Ganghwa Island, which became a new capital at the beginning of the period of military rule, Buddhist monks Doseon and his disciple Yeocheol re-emphasized the idea of protecting the nation. Meanwhile, Samso was established in the towns around Gaegyung to enhance the status of the capital. Around that time, it was again argued that the capital should be moved to Namgyung, centering on Asadal faith, and Namgyung was designated as a seat. Although the opening of the capital city was restored to its capital during the reign of Mongolia, monks of Suseonsa Temple in Sooncheon, the provincial capital, especially Jeongoh, a Buddhist monk of Baeknyeonsa Temple in Gangjin, emphasized the idea of protecting the nation, but did not insist that the capital should be moved. At the end of Mongolia's rule, Buddhist monk restoration suggested that the idea of protecting the nation should be a national governing ideology, and his disciple Jukgan also made such a claim, but did not insist on moving the capital. Bowoo, a teacher of King Gongmin's king, argued that Hanyang should be the capital of the country, hoping to promote Buddhism in Samgaksan Mountain in Namgyung(Hanyang), and Yongmunsa Temple in Yangpyeong, the surrounding province. However, it failed when then-political heavyweight Shindon insisted on using Choongju as the capital. In the early days of the founding of the Joseon Dynasty, the project to make Hanyang the capital by Moo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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