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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노숭의 유배일기 『남천일록』(1801~1806)으로 본 서울・경기 양반가의 혼인과 유대 -여성 가족 입장을 중심으로-

From Shim No-sung's exile diary, “Namcheon-ilok(南遷日錄)”(1801-1806) Marriage and Bond between Seoul and Gyeonggi Yangban Families - From the Perspective of a Female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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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는 여성 가족의 시선에서 기록한 심노숭의 유배일기 『남천일록』(1801~1806)을 통하여 서울・경기 지역 혼인 문화와 가족 간 유대감의 확인하였다. 유배인 심노숭은아끼는 딸을 가능한 만큼 최선을 다하여 돌보았다. 여성 교훈서를 만들고 기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데 출산에 긴요한 倭物을 구하였으며 기장의 실력 있는 의원과 상의하여 산후증 처방을 직접 지었다. 혼례를 지키지 못한 심노숭은 참담함을 안고 상세히 기록으로 남겼다. 식은 심노숭가의 집안 소속 외거노비의 집 가관으로 정하여 가관친영으로 치렀다. 혼례식 후 사위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딸은 약 10개월 만에 신행하여 시집살이를 시작하였다. 부부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삼재의 운이 들었다는 사정 때문에 양가의 합의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딸은 출산으로 인해 곧 친가로 돌아왔다. 사위는 양가의 결합으로 생긴 친가족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심노숭과 그의 장인 이의술은 막역한 사이였다. 이의술은 정치적 공격으로 가까운 친척조차 오지 않았던 심노숭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심노숭 어머니의 건강을 돌보았다. 심노숭은 유배길에 무리해서 장인의 빈소를 찾아갔고 유배지에서는 혼자서 따로 제사를 지냈으며 장모와 편지로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심노숭과 사위 이현모의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위를 새 가족, 자기 집에 돌아온[歸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열 살 무렵 부모를 잃은 딸 부부는 기이한 인연이라고 하거나 사위의 이름을 더 좋은 뜻으로 바꾸려고 하였고 자기 집안에 사위가 들어왔으니 공부는 물론이고 출세에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이라 여겼다. 심노암은 마땅히 형을 대신해서 사위의 글쓰기 실력을 끌어올렸다. 한편 사위는 자기 부인의 친모, 즉 장모 되는 전주이씨의 묘소에 찾아가 인사드리고 나중에는 심노숭 집안에서 마련한 혼방에 머무르며 제사에 참여하였다. 여성 가족의 입장에서 본, 심노숭 집안사람들이 나눈 가족 유대감은 지금껏 알고 있던 통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19세기 초에도 가족의 범위는 夫係만으로 좁아지지 않았고 妻係로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marriage culture and family bonds in the Seoul and Gyeonggi regions through Sim No-sung’s exile diary “Namcheon-ilok” (1801-1806), which was recorded from the perspective of female family members. The wedding ceremony was conducted as a ‘Gagwanchinyeong(假館親迎)’. In Sim No-sung’s family, him’s family temporarily designated one of their slaves’ house. After the ceremony, the son-in-law went back to his house. And the daughter started to live in her husband’s house after about 10 months. It was because one of the couples had bad luck. However, the daughter soon returned to her family because of the birth of her child. The son-in-law was no different from his new family. Even after the death of his first wife, Shim No-sung remained very close to his father-in-law, Yi Eui-sul. This relationship was the same with his son-in-law. He referred to his son-in-law as a new family member, a person who returned to his home. He was convinced of the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his husband and his daughter, who lost her parents at the age of 10. He also tried to change his son-in-law’s name to a better meaning, and thought that the family would be of great help to his son-in-law’s success. Shim No-am deservedly improved his son-in-law's writing skills on behalf of his brother. Meanwhile, the son-in-law visited the grave of his mother-in-law, Jeonju Lee, and greeted him, and later stayed in a mixed room prepared by the Sim No-sung family and participated in the mother-in-law’s memorial service. The family bonds of the Sim No-sung family were different from the conventional wisdom. Even in the early 19th century, the scope of the family did not narrow only to the husband's lineage, but also extended to the wife's line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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