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서울 동부지역의공간재편과 상업발달 -이현시장의 성립 배경에 대한 재검토-
Spatial Reorganization and Commercial Development in Eastern Seoul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examining the background of the establishment of Yi-hyeon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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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후기 서울 동부지역 상업 유통의 핵심기지로 역할한 이현시장의 성립 배경을 정부의 군사, 의례 정책의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서울 동부지역은 건국 초부터 종묘와 문묘 등 국가 제향 시설이 위치했던 곳으로 국왕의 정기적인 행차가 있기는 했지만, 서남부에 비해 민호와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았으며 정부차원의 모민 정책도 시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양란 이후 군제 개편과 도성방어에 대한 필요가 고조되면서 훈련도감 무예청·한려청·어영청·장용영과 같은 군문 시설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효종의 잠저인 어의궁과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 조성되면서 왕실제향 기능이 확대되었다. 이로써 왕실 제향과 내탕을 위한 물품 조달이 활성화되는 한편 궁궐 숙위와 도성방어를 위한 군인인구 유입이 가속화되면서 이 일대 군인, 상인층이 주도하는 민간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의 3대시 중 하나인 이현시장이다. 이현시장은 특히 정조대에 활성화되는데, 이는 정조대 두 가지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정조는 즉위 직후부터 동부지역에 상인 및 군인 인구를 적극적으로 유치함으로써 궁궐 숙위와 제향 의례를 뒷받침할 서울 주민을 확보하고자 했다. 실제로 1782년(정조 6) 어의궁 인근에 무예별감 소속 군인을 입주시키는 한편, 경모궁 인근에 여객주인을 비롯한 시전, 현방을 유치시킴으로써 이 일대 군인, 상인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792년(정조 16)에는 연화방에 장용영 군인을 이주시키고 별도의 방역을 부과함으로써 군인마을이 형성되었다. 이현시장에 참여한 상인층의 다수는 이들 군인과 여객주인, 시전, 현방들이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모민책은 기존의 시전질서와 충돌하는 면이 많았기에 동부지역에 입주한 상인들은 처음부터 어물전과 현방 등의 견제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동부지역 상인들은 정부에 고충을 호소하여 동북 상인들에게 부과되는 상업세[전세·연세] 인하 방안을 얻어내는가 하면, 반촌의 현방이 판매하는 쇠기름값도 계절별로 정액화하여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군인들의 경우에도 자신이 속한 군문의 수공품 재료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난전을 개설하거나, 이현의 입지 조건을 활용해 여객주인업을 병행하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이현시장을 이끄는 주요 상인층으로 성장해갔다. 이처럼 조선후기 이현시장은 정부의 군사, 의례 정책에 성장, 발전하게 된 시장인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기존 상업 질서의 불합리한 견제를 딛고 시장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어디까지나 시장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종루・칠패와 함께 이현시장을 서울 3대시로 성장시킨 주역들이었으며, 1905년 광장시장의 설립에 참여함으로써 동대문시장의 역사적 기원을 창출해낸 이들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background of the establishment of Yi-hyeon Market who served as a key base for Seoul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erms of the government's military and ritual policies. In eastern Seoul, where national ceremonial facilities such as Jongmyo(宗廟) and Munmyo(文廟) have been locat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country's founding, there were not floating populations compared to the southwestern part, and government’s immgration policies were not implemented. However, after the Imjin War, the need for reorganization of the military system and defense of the capital increased, and military facilities such as Muyecheong(武藝廳), Hallyeocheong(漢旅廳), Eoyeongcheong(御營廳), and Jangyongyoung(壯勇營) increased, and the function of the royal memorial service was expanded with the establishment of Eouigung(於義宮), the residence of Hyojong, and Gyeongmogung(景慕宮), the shrine of Sado. As a result, procurement of goods for royal ceremonies were promoted, while the influx of the military population for royal residence and the defense of the capital accelerated, forming a private market led by soldiers and merchants in the area, which is Yi-hyeon, one of the three Seoul markets in Joseon. Especially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the Yi-hyeon market became active, which is closely related to the two policies of the reign of King Jeongjo. Immediately after taking the throne, King Jeongjo sought to secure Seoul residents to support the royal escort and the ritual for the memorial service by actively attracting a population of merchants and soldiers. In 1782 (the 6th year of King Jeongjo's reign), a merchant village was formed in this area by attracting local merchants near Gyeongmogung. In 1792 (the 16th year of King Jeongjo's reign), a soldier village was formed by moving Jangyongyoung soldiers. Many of the merchants who participated in the Yi-hyeon market were these soldiers, local merchants and trade brokers. As such, merchants in eastern Seoul, including Yi-hyeon, were growing into new commercial forces that threatened Sijeon merchants, and gradually grew into independent merchants by accumulating know-how in manufacturing and distributing goods amid conflicts and competition with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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