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로서의 최치원(崔致遠)의 위상과 면모-『조선왕조실록』과 ‘사산비명(四山碑銘)’을 중심으로
The status and appearance of Choi Chi-won as a Confucian scholar-Based o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Sa-San-Bi-Myeong(四山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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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최치원은 한국 고유의 전통 사상인 ‘풍류’에 대해 밝힌 사상가이다. 그는 신라 시대의 학자로 유·불·도의 사상에 정통하였다. 최치원이 삼교의 사상에 정통했다는 사실은 그를 평가하는 데 있어 상반된 결과를 가지고 왔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그는 ‘유학적 정통성’을 가진 학자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도학을 정밀히 연구하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물론 한 학자에 대해 시대가 변하면서 각기 다른 평가가 내려지는 경우는 많이 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이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본 논문은 ‘유학자로서 최치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 가운데 어느 평가가 보다 온당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되었다. 평가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는 최치원이 지은 ‘사산비명(四山碑銘)’에서 찾아보았다. 인간 최치원 그리고 정치가 최치원의 유학자적 면모들을 짚어봄으로써 부정적인 평가에서 근거로 삼는 유학적 정통성에 대한 논의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Choi Chi-won is a thinker who revealed the traditional Korean idea of 'Pung-ryu'. He was a scholar of the Silla Dynasty and was well versed in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The fact that Choi Chi-won was well versed in the ideas of the three religions resulted in conflicting ways of evaluating him. In particular,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he received positive reviews as ‘a scholar of Confucian orthodoxy’, or negative reviews that ‘he did not study Confucianism precisely’. Of course, there are many cases where different evaluations are made of a scholar as times change. But why did he get such conflicting reviews during a single period? This paper was designed to discover which of the positive and negative evaluations of Choi Chi-won as a Confucian scholar are more reasonable. The rationale for the justification of the assessment was found in ‘Sa-San-Bi-Myeong(四山碑銘)’ written by Choi Chi-won. Looking at Choi Chi-won's Confucian aspects of ‘human beings’ and ‘politics’, we could see that the discussion on Confucian legitimacy based on negative assessments was unjust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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