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의 역사인식 연구
A Study on Choi Chi-Won's Historical Cog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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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최치원의 역사인식에 관한 연구이다. 우선 그의 생애와 저술을 간략히 살피고자 한다. 이는 그가 유학자로서 현실적인 합리주의 사관을 형성하게 된 과정을 역사인식의 배경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역사인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첫 부분은 그의 역사인식이 끼친 영향 때문에 지속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는 문제이다. 이는 김부식의『삼국사기』와 일연의『삼국유사』에 나오는 최치원 저술들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첫째는 한국 상고사에 관한 인식의 문제이다. 그는 한국 상고사에 있어 기자를 가장 멀리 인식하고 있었다.『삼국사기』에서 기자를 상한으로 삼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김부식이 유학자로서의 최치원의 인식과 그 궤를 같이 한 때문으로 보았다. 반면『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서 삼한을 ‘마한-고구려’, ‘변한-백제’, ‘진한-신라’로 연계한 최치원설을 적극 수용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둘째는『제왕연대력』과 중국과 신라와의 관계 설정에 관한 문제이다.『제왕연대력』에 보이는 왕호의 인식이 김부식에서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진전된 모습으로 바뀐 반면에, 일연은 최치원설을 일부 따르고 있음을 비견해 보았다. 태종무열왕의 강조는 두 사서가 같은데,『삼국사기』에서 문무왕의 당과의 결전을 특기하여 신라의 독자성을 크게 부각시킨 측면은 역사서술의 진전된 모습임을 밝혀 보았다. 셋째는 유학자로서 3교 회통적 인식과 효선쌍미적 인식에 관한 문제이다. 최치원은 유학자이기는 하지만 유불도 3교의 회통적 인식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고려조 전반을 거쳐 비슷한 유형의 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그는 효선쌍미적인 인식을 선사들의 비명에서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일연이『삼국유사』에서 「효선」편을 설정한 것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 부분은『계원필경집』 등 그의 저술에 보이는 현실적 역사인식이다. 하나는 당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관으로 역사를 인식한 사실이다. 그는 합리주의를 표방한 유학자로서 매우 현실적인 역사인식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연호의 중시, 당 중심의 외교관계 등에 주의해 보았다. 이 과정에서 최치원과 김부식에 의해 杜撰된 수유학승 안함의 귀국연대 기사를 정리해 보았다. 다음은 사회개혁론에 드러난 그의 인식이 인재등용에 초점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신라 불교와 풍속을 동아시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한문문장으로 표기한 점이다. 그에 의해 한문 문장으로 채록된 많은 불교 관계 기사는 고대문화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그는 신라시대의 국제적 상황인식을 가지고 사실적인 역사서술을 남겨 놓음으로써 한국의 역사가로서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정도의 역사인식을 소유한 인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llustrate Choi Chi-Won's historical cognition. In order to fulfil the purpose, I mainly examined his life and writings. This approach is based on my opinion which regards the process where he, as a confucianist, formed realistic rationalism as the background of his historical cognition. I explained his historical cognition by dividing it into two aspects. First, I examined his historical cognition by focusing on his writings introduced in "Samkuksagi" by Kim Boo-Sik and "Samkukyusa" by Ilyeon. These writings have been continually studied because of their influences on other scholars after him. The discussions about this aspect are focused on the three parts. The first discussion is Choi's cognition on the Korean ancient history. He put the period of "Gija" on the top of the history. This kind of understanding is same as that of Samkuksagi because Kim Boo-Sik 's historical cognition is almost same as that of Choi Chi-Won. Also, Samkuksagi and Samkukyusa reflect Choi's histotical cognition which accepts the relation beween "Mahan" and "Kokuryeo," between "Byunhan and Backjye," and between "Jinhan and Silla."The second discussion is the relation between China and Silla and "Jyewangyeondaeryuk." Kim Boo-Sik changed Wangho's historical cognition showed in Jyewangyeondaeryuk into the realistic understanding. However, Samkukyusa by Ilyeon followed partly the Choi's understanding. The above two historical books emphasize the role of Mooyulwang; however, Samkuksagi can be understood as some more advanced historical book, compared with the Choi's understanding of history, in the sense that the book emphasizes the independency of Silla by mentioning Munmuwang's decisive battle against Dang. The third discussion is the understanding about relations among the three religions(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nd "Hyosunsangmi (two main values, filial piety and Zen)." Choi Chi-Won understood that the three religions could be communicated each other, although he was a confucianist. Most of scholars showed this kind of understanding during the first part of Koryeo dynasty. Choi explained the values of filial piety and zen in the epitaphs of the previous Buddhist priests. This is very similar as the fact that Samkuyusa includes the chapter of filial piety. Second, I discussed Choi's historical cognition showed in his writings, including "Gyewonpilgyungjip." In this part, I argued that he showed Dang-centered historical cognition. This was resulted from the fact that he, as a rationalist, realistically understood history. This kind of his understanding is showed in his emphasis of Chinese reign style and the foreign relations centered to Dang dynasty. Thus, I readjusted the year (reported by Choi-Chi-Won and Kim Boo-Sik) which Anham, a Buddhist priest, returned to Silla. In addition, I illustrated that Choi's study on social reform was focused on the recruit system of the capable men. I also stated that he wrote in Chinese characters which the East Asian people could understand. Although he had Silla's nationality, he explained history in the international point of view. This reflects that he, as a historian, had a ground breaking historical cognition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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