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장면정부의 수립: 『사상계』의 당대 정치담론을 통해 본 재고찰
4∙19 & the Establishment of Chang Myun Government: Rethinking Through Political Discourses of 'SaSang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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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사상계』의 당대 정치담론을 통해서 4·19와 그 결과 출범한 장면정부의 수립에 대해서 재고찰하여, 현대 한국 사회를 성찰해보고자 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4·19는 혁명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4·19를 ‘혁명’이라 한 것은, 시민혁명의 의미를 한국사회의 정치적 경험과 현실 속에서 적극적,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주체적으로 자유민주정치체제를 정립해가고자 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민중이 자발적인 집합행동으로 여론을 표시할 수 있었다는 자각성, 진정 하나의 민주 ‘혁명’을 치루었다는 감회를 되새겨 민주정치를 이룩해 나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 강한 의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19의 ‘결과, 성과로서의 혁명’의 현실은 달랐다. 4월‘혁명’을 주동한 학생은 직접 정치의 담당자가 아니었고, 기성세대는 누구도 직접 그 혁명의 의지를 완수하고자 나서지 않았다. 학생운동에 동참하여 지향으로서의 ‘혁명’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학교수로 대표되는 지식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장면총리가 제한적 선택의 기로에서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 완수’의 차원에서 어떠한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과연 지식인의 소임, ‘비판적’ 기능의 사회적 소임이란 무엇이며 어디까지인가. ‘혁명’이라 이름한 ‘4·19정신’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지향하는 현재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지식인의 존재와 존재의미와 함께, 정치 지배세력과 여론의 관계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rethink contemporary Korean society through the political discourses of 'SaSangGye' on 4·19 and the establishment of Chang Myun government. 4·19 can not be said as ‘revolution’, strictly speaking. However, it was named ‘revolution’ at that time. It was the representation of Koreans’ will to subjectively establish liberal democratic political system, active and positively interpreting the meaning of civil revolution in their political experience. It was the strong will that they wanted to make 4·19 as the footstone to start democratic politics thinking over the recognition that Korean masses could represent their will by collective behavior and they accomplished practical democratic ‘revolution.’Nevertheless, the reality of the result, the outcome of ‘the revolution’ of 4·19 was different. The prime movers of April revolution were students. They could not participate in politics. And any one of the older generations did not come out to take charge in the accomplishment of ‘the revolution.’ Neither, the professors who did decisive role to make the April student movement as ‘revolution’ participating in the students’ side. Intellectuals did not do any kind of real political action as like prime minister Chang Myun did not any choice in the limited crossroad. What is the task, mission of the intellectuals? What is the so called ‘critical function’ of intellectuals? The sprit of 4·19 which named April student movement as ‘revolution’ is still meaningful in this time to make Korean democracy more solid and stable. The political discourses of April revolution makes us rethink intellectuals' role and its’ meaning as well as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al leaders and public 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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