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 차비대령화원의 업무와 실상
Task and Achievement of Chabi daeryeong hwawon (painters in waiting to the court) in the Era of King Jeong jo (r. 177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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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 재위 1776-1800년)는 1783년 도화서 화원 10명을 규장각에 차출하여 운영하는 차비대령화원제(差備待令畵員制)를 시행하였다. 왕실 도서의 출간을 담당하는 규장각에서 어제(御製)의 인찰(印札) 작업을 위해 화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차비대령화원들은 명목상의 임무인 인찰 작업 외에도 다양한 화업(畵業)을 담당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정조대 복무하였던 차비대령화원 23명을 중심으로 이들이 구체적으로 담당하였던 업무를 기록을 통해 살펴보았다. 차비대령화원의 업무는 고유 업무와 도화서 화원과의 공동 업무로 나눌 수 있다. 차비대령화원의 고유한 업무는 어제 인찰, 어필(御筆) 비문(碑文) 조성, 관찬(官撰) 도서 출간 등이 있다. 차비대령화원은 서책의 인찰과 도설(圖說), 비문의 전홍(塡紅)과 탁본을 맡았다. 이들은 모두 규장각에서 관장한 사업이라는 점과 국왕의 말과 글씨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비대령화원은 도화서 화원과 함께 도감의 사역과 어진 도사에도 참여하였다. 의궤의 화원 별단(別單)을 종합한 결과 차비대령화원은 통계적으로 일반화원보다 도감에 더 자주 참여 기회를 얻었으며 더 중요한 일에 포진되었고, 따라서 상전(賞典)의 기회도 많았다. 도감 안에서 차비대령화원에게 우선 배당된 일은 책(冊)·보(寶)·명정(銘旌)·관의(官衣) 등 왕실 상징물의 제작이었다. 한편 어진도사 화원은 정조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던 김홍도(金弘道, 1745-1806?)와 이명기(李命基, 1756-1802 이후)를 제외하고 전원 차비대령화원들로 채워졌다. 이처럼 어진 도사가 차비대령화원의 기본적인 업무로 자리 잡은 것은 정조가 규장각에 어진의 제작과 봉안을 명하면서부터이다. 본 연구에서는 의궤에 기록된 주관화사(主管畵師)와 동참화사(同參畵師), 수종화사(隨從畵師) 외에도 10명의 전·현직 차비대령화원이 보조로 참여하였음을 추가로 밝혀내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차비대령화원은 국왕의 말과 글, 신체를 재현하는 일을 전담하였다. 다시 말해 이들은 단지 국왕을 위해서 서화를 제작하였다기보다 국왕 그 자체를 시각화하는 일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King Jeongjo established a new classification of painters called Chabi daeryeong hwawon (painters in waiting to the court). He selected ten best court painters from Dohwaseo (Bureau of Painting) and placed them in Kyujanggak, the royal research library and institution. The ostensible reason for the relocation of the court painters was to assist the publication of royal anthologies. However, Chabi daeryeong hwawon had several different task besides ruling lines in the anthologies. This research aims to explore the actual task of Chabi daeryeong hwawon by analyzing the records of assignments practiced by the twenty three members of Chabi daeryeong hwawon active in the era of Jeongjo. Chabi daeryeong hwawon had its own independent task and sometimes shared the assignments with the Dohwaseo painters. The work solely assigned to Chabi daeryeong hwawon was the ruling lines of royal anthologies, the refining and rubbing words of royal steles, and illustrating the books published by Kyujanggak. These assignments have common features in which, they were all in the projects related to the King’s words and supervised by Kyujanggak. Chabi daeryeong hwawon worked with Dohwaseo painters in the official projects of Dogam (Temporary Office for the Royal Rites). According to the eugwe (the royal protocols) created in the era of Jeongjo, Chabi daeryeong hwawon obtained more opportunities, better positions, and higher awards in Dogam. The task alloted to Chabi daeryeong hwawon in Dogam was to produce the royal symbols such as chaek (the book of enthronement), bo (the royal seal), myeongjeong (the funeral banner of the deceased), and guan’eu (the funeral clothes of the deceased), while the Dohwaseo painters were assigned to manufacture furniture or flags used for rituals. Chabi daeryeong hwawon also collaborated with Dohwaseo painters in the project portraying the kings. Most of Chabi daeryeong hwawon participated in the portrait project, but this time to assist the two Dohwaseo masters, Yi Myeonggi (1756-1802?) and Kim Hongdo (1745-1806?). The portrait of kings were managed by Kyujanggak and mainly by its Chabi daeryeong hwawon but some masters in Dohwaseo, who were exempted from ordinary duties and took special orders from the King, were invited to the portrait project with Chabi daeryeong hwawon. Chabi daeryeong hwawon worked both independently and jointly with the Dohwaseo painters. In both occasions, Chabi daeryeong hwawon ’s task was to visualize the voice, the words, and the body of the king. In other words They not only worked for the king, but also worked to represent the king him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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