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正祖, 1776~1800대 어보御寶 제작 장인의 변화와 특징
Development and Characteristics of the Art of Royal Seal Engraving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177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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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정조의 재위 기간인 1776년부터 1800년까지 약 25년 동안 어보는 왕실의 중요한 행사인 왕비, 왕세자 책봉과 왕실 구성원들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 국장, 부묘 의례를 통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의례를 진행하며 만들어지는 어보는 올려지는 그 대상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어보를 제작할 때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조대 활동한 금보장은 표덕운으로 표시재, 표성채 등으로 이어지는 표씨 집안의 장인이다. 소속도 모두 훈련도감으로 집안과 소속에 따라 금보를 제작하는 기술이 계승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표덕운이 제작한 금보는 옥보(인)과는 달리 이전 시기의 금보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조형을 확인할 수 있다. 정조대 금보장은 활동이 이어지는데 반해, 옥장은 단절된 흐름을 보인다. 숙종~영조대까지는 어보 조성·간역인이 활동하여 옥보를 직접 조각하기도 하고 장인을 지휘하며 옥보의 완성도를 높였다. 하지만 정조대 조성·간역인이 더 이상 활동하지 않게 되자 이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제작 주체를 옥각수 원명장이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주목할 점은 정조대를 기점으로 변화한 장인의 명칭이다. 금보를 제작했던 금보장, 옥보(인)을 제작했던 옥장 등의 명칭에서 ‘각수’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표덕운은 금보장에서 금보각수로 의궤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며 원명장 역시 옥각수·옥보각수라는 명칭으로 의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어보 제작에 장인의 명칭이 분화되는 것은 이후 고종대까지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이 정조대라는 점에서 왕실 공예 장인의 역할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Abstract
Records show that a number of royal seals were created in late Joseon when the dynasty was under the reign of King Jeongjo from 1776 to 1800 and used for a variety of state or royal occasions such as the investiture of the queen and crown prince, ceremonies for honoring royals with honorary titles, state funerals, and the enshrinement of the royal ancestors’ spirit tablets. Each royal seal was regarded as representing the authority of its owner, or user, therefore, seal makers were required to spend all their artistic capacity to create a flawless product. The task of golden royal seal produc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was undertaken by the artisans of the Pyo family, Pyo Deok-un, Pyo Si-jae and Pyo Seong-chae in particular. Considering that all these artisans belonged to the same government agency, the Military Training Command (Hullyeondogam), it is highly possible that the profession of making golden royal seals was inherited through a particular family. The golden royal seals made by Pyo Deok-un were, unlike jade seals, not very different in design and other details from the seals made by his predecessors. The golden royal seal makers under the reign of King Jeongjo maintained the tradition of their profession while the jade seal engravers did not. In the earlier period, during the reigns of King Sukjong (r. 1674-1720) and King Yeongjo (r. 1724-1776), for example, the projects of jade seal production typically involved the participation of other government officials. After their participation became suspended during King Jeongjo’s reign for an unknown reason, it seems that their role was conducted by a jade seal engraver named Won Myeong-jang. It is notable that the title given to the seal engravers was also changed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The earlier title, Jang (i.e. “artisan”), was now replaced by Gaksu (i.e. “master engraver”) and, accordingly, the title of the golden seal engraver Pyo Deok-un was changed from Geumbo-jang to Geumbo-gaksu while Won Myeong-jang's earlier title was also changed to Ok-gaksu or Okbo-gaksu as recorded in the Royal Protocols (Uigwe) published at the time. The changed title continued to be used until the reign of King Gojong (r. 1863-1897, and 1897-1907), suggesting that the function and status of the court artisans of Joseon were established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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