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한일회담 예비교섭을 중심으로 본 이승만의 위협인식과 미국
Analyzing Syngman Rhee’s Threat Perceptions And the U.S. during The Preliminary Negotiations for the 4th Korea-Japan T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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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57년 제4차 한일회담 예비교섭시기 이승만이 인식하였던 위협은 무엇이었고, 이에 미국은 어떠한 입장을 나타냈는가’에 대해 고찰하였다. 제4차 회담 예비교섭 시기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당과 일본의 유대를 매우 위험하게 인식했고, 이를 한일회담 정책에 반영하여 일본에 대한 미국의 호의를 비난했다. 이러한 이승만의 위협인식은 한국이 미국의 우선순위가 되어 미국의 인정을 일본보다 더 많이 받고 국제 냉전에서 앞장을 서야 한다는 이승만 정권의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미국은 냉전기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이 중요했으므로 한일 양국의 협력을 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을 위협으로 인식했던 이승만 정권과의 견해 차이로 인해 제4차 한일회담 예비교섭 과정에서 청구권과 관련된 미국 해석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 결국, 미국은 이승만 정권의 당시 한일회담 정책을 신뢰하지 않았다. 본 논문은 한국 대통령의 위협인식이 한일 간 문제에서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Syngman Rhee’s ‘threat perceptions’ and the U.S. stance during The preliminary negotiations for the 4th Korea-Japan Talks. President Syngman Rhee perceived Japan’s ties with the Communist Party as a Threat and criticized the U.S.’s favor toward Japan. The Threat perceptions of Rhee influenced the Rhee regime’s policy that South Korea should become a priority for the U.S. and gain more U.S. recognition than Japan and take the lead in the international Cold War. The U.S. faced difficulties with the U.S. interpretation of the Claims during the preliminary negotiations for the 4th Korea-Japan Talks due to Syngman Rhee, who perceived Japan as a threat. The U.S. hoped for cooper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in the Cold War era and did not trust Syngman Rhee’s administration policy. This study emphasizes that the perceptions of threat by the Korean president can affect not only Japan but also the relationship with the U.S. in issues between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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