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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마을유적 소고- 방어시설이 없는 일반 마을유적을 중심으로 -

Studies of Balhae’s settlement sites - According to the data of common settlements without defense facilit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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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시설이 없는 일반 마을유적은 평민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발해의 일반 마을유적은 중국의 길림성과 흑룡강성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현재 약 319개소가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는 발굴조사 혹은 수습조사를 통해 유구의 내용이 알려져 있는 19개 발해 마을유적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해 보았다. 유적은 절대 다수가 크고 작은 강가의 평지에 입지하는데 이는 발해 평민들의 생업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유적에서는 잡곡류, 콩류, 공예 농작물 등의 탄화곡물, 말, 소, 개, 돼지 등의 가축 뼈와 들짐승의 뼈, 물고기의 뼈, 담수와 해수의 조개껍질 등이 출토되었다. 이 사실은 발해 평민들이 농사와 가축사육에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냥과 어로, 담수 연체동물의 채집에도 종사하였음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농기구, 어구, 사냥도구 등의 유물들도 뒷받침한다. 해수 조개껍질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까지 해산물이 공급되었음을 말한다. ‘산삼파개’는 산삼을 판 심마니도 존재하였음을, 술 저장 토기는 평민들이 술도 빚어 마셨음을 말해 준다. 마을유적에서는 발해 평면들의 의복과 장식과 관련된 유물들도 출토된다. 마을유적은 면적에 따라 소형(5천~2만5천㎡), 중형(5만~15만㎡), 대형(28만~30만㎡)으로 구분된다. 대형유적은 진흥유적과 꼰스딴찌노브까 1유적 두 곳이다. 진흥유적은 목단강을 따라 나있던 ‘흑수말갈도’에, 꼰스딴찌노브까 1유적은 ‘솔빈도’에 각각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유적은 발해의 지방 교통로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마을유적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발해 솔빈부가 있던 수분하-라즈돌나야 강 주변에는 연해주 지역에만 135개의 발해유적이 알려져 있어 이 유적들을 서로 이어주던 그리고 발해의 중심지와 연해주 남부지역을 서로 이어주던 교통로의 존재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이 교통로는 ‘솔빈도’라 부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대부분의 마을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는 구들의 존재는 발해시기에 구들이 이미 일반 평민들에게까지 대중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마을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구들은 발해의 평면들이 마을 내에서 가죽 가공, 제철 작업, 금속가공 작업, 토기 생산, 토제품 생산, 기와 생산 등과 같은 수공업 생산에도 종사하였을 보여 준다. 도로유구와 차관을 통해 볼 때에 마을에는 길이 나있었고 그 길을 따라 짐을 실은 수레가 다녔음도 알 수 있다.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마을유적에서 발견되는 토제 기마인물상은 발해 평민들 사이에 샤머니즘이 존재하였음을 보여 주며, 또한 마을유적 가까이에 사찰유적이 존재하는 것은 평민들 사이에도 불교가 어느 정도 보급되었음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층의 상태가 알려져 있는 유적들 중 56%가 발해 때에 새로이 개척된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이는 발해시기에의 급증한 인구증가 및 식량 확보를 위한 새로운 땅의 개간활동이 매우 활발하였음을 반증한다. 또한 발해 때에 새로이 개척된 연해주 지역의 마을유적들에 모두 구들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 주민들의 구성에 고구려계가 적지 않았음을 증명할 것이다

Abstract

Settlements without protective structures may best show the life of ordinary people. There are totally about 319 settlements of Balhae in the territory of Heilongjiang and Jilin provinces of China and Primorye region of Russia. In this work 19 settlements in which the objects are known through excavation or rescue operations are studied from different points of view. Balhae settlements in the vast majority of cases are located nearby large rivers and their tributaries, that is associated with life activities of their inhabitants. In settlements the charred grain crops, such as cereals, legumes and industrial crops, bones of domestic animals such as horses, cattle, dogs, pigs, wild animal bones, fish bones, shells of freshwater and marine mollusks are discovered. This fact suggests that the common people in Balhae engaged not only in farming and cattle breeding, but also in hunting, fishing and gathering shellfish. This is confirmed by agricultural implements, tools for fishing and hunting. Sea shells of marine mollusks indicate marine products were supplied in areas far from the sea. “Sansam poking-stick” says that “simmani” that is a collector of sansam(mountain ginseng) existed in Balhae period, and ceramic vessels with the remnants of alcohol show that ordinary people cooked ardent drinks and drank them. In settlements artifacts related to garment pieces and ornaments are also found. The settlements are divided into small (5.000-25.000㎡), medium (50.000-150.000㎡) and large (280.000-300.000㎡). Large settlements are represented by two ones: Zhenxing and Konstantinovka 1. The first one is located in the area of “road Heuksu Malgal”, the second one near the “road Solbin” so we can say that these were two settlements which played the biggest role at the provincial roads in Balhae. The territory of the Suifen-Razdolnaya rivers-basin only in Primorye region contains 135Balhae sites, so we can assume that there was a road that connected these sites to each other and the center of Balhae with the southern part of Primorye. It will be correct to call this road “Solbindo”, that is, “Solbin road”. The presence of kangs (gudyl) in most of the settlements shows that in Balhae time gudyl has already been distributed among ordinary people. In addition, the findings and the objects studied in the settlements say that their inhabitants were engaged in handicrafts such as leather processing, production of iron, treatment of metal parts, production of pottery and tiles. As judged by the roads and wheel hubs, we can assume that in the settlements there were roads, where wentcarts. As to the beliefs of ordinary people, clay horsemen from the settlements indicate the existence of shamanism; in addition, the presence of Buddhist temples in the vicinity of settlements suggests that Buddhism was to a certain degree diffused among ordinary people of Balhae. Finally, among the settlements in which cultural layers could be defined, 56% are exploited for the first time in Balhae period. This fact indicates that in Palhae period the population increased and new land for food production was actively exploited. In addition, the fact that in all the settlements in Primorye, first exploited in Balhae period gudyl were built, would indicate that among the inhabitants were many people of Koguryo or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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