渤海의 天下觀연구 - 高句麗와의 連繫性을 중심으로 -
The World View of Balhae : Focusing on the Connection with Koguryo’s World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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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구려와 발해는 서쪽으로부터 발해와 황해, 그리고 동쪽의 동해를 통해 주변 제민족ㆍ지 역ㆍ국가와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본고에서는 해양문화 가운데서도 동해를 통한 교역, 교 류 루트, 해양신앙의 면에 주안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고구려와 발해는 발해와 황 해를 통해, 중국과 교류를 하기도 했으나, 관련 기록이 동해해역권에 가장 많이 남아 있기 때 문이다. 우선 교역면에 대해서는 교역의 형태, 교역의 주체 등에서 유사성을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즉 외교사절단에 의해 이루어진 공무역, 지방세력과 민간상인 등에 이루어 진 사무역 등은 일 본에서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거의 유사한 형태로 지속되었다. 교역의 주체면에서도 고구려 의 경우에는 민간상인의 존재양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 외의 경우 외교사절단이나 지방세력 등의 존재는 인정할 수가 있었다. 다음으로 동해를 통한 교류루트도 발해가 고구려의 항로를 그대로 유지ㆍ계승했던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아울러 해양신앙면에서도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불교와 샤머니즘계열의 해양 전승 및 해신에 대한 제사 등에서 두 나라사이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해양문화측면에서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thesis aims to study the world view of Balhae to ultimately seek the correlation with that of Koguryo. The first national name of Balhae was the‘ kingdom of Jin’, meaning the‘ supreme entity under the Heaven’. King Mun proclaimed himself as the King of Koguryo, so as to symbolize that Balhae was the legitimate successor of Koguryo’s world view. Balhae seemed to have enjoyed the imperial status by subjugating several kingdoms as vassal states in Manchuria. This also signifies that Balhae succeeded the political structure of Koguryo. Balhae’s capital relocation was based on the Koguryo world view as well, since it’s relocation policy focused on launching southward push into the Korean Peninsula to include Shilla into its world. Balhae’s external policy towards Tang China, Shilla and Japan was of successive nature too. It’s policy towards Tang and Shilla was rooted with hostility, since two nations have previously joined together to destroy Koguryo, Balhae’s predecessor. Balhae expressed active dignity to China, while endeavoring to re-estalish the dominance over Shilla as Koguryo did before. Balhae also tried to execute national supremacy over Japan, by reminding Japan of Balhae’s legitimate position as the successor of Koguryo, the ultimate Empire of north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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