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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고구려전에 나타난 태조대왕의 沒年 문제

The Study on the Year of King Taejo’s Death in Hou Han 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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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후한서』 고구려전에 나타난 宮(태조대왕)의 沒年을, 그의 죽음을 전하는 정보와 직접적인 관련이있는 현도태수 姚光의 몰년 문제와 비교 검토하여 그 타당성을 분석하고, 이를 121년 고구려의 요동 공격 양상과 결부하여 살펴본 글이다. 건광 원년(121) 宮이 사망하였을 때 이를 틈타 고구려를 공격하자고 上言한 인물은 요광이다. 요광은 그해 4월 사망하였다. 그런데 『후한서』 고구려전에는 4월 이후에도 宮이 고구려군의 공격을 지휘하는 양상이확인된다. 이에 요광의 사망 연도는 ‘建光’ 원년(121)이 아니라 ‘延光’ 원년(122)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광과 같은 해 같은 달에 사망한 유주자사 馮煥의 죽음을 기록한 「馮煥殘碑」에는 풍환이 ‘永寧 2年’ 즉 建光으로의 改元이 있기 전인 121년 4월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요광의 몰년은 121 년이므로, 『후한서』 고구려전에서 전하는 태조대왕의 사망 시기에는 모순이 있는 것이다. 이에 ‘是歲宮死’ 기록을 121년 고구려가 요동을 공격할 때 있었던 거짓 정보에 근거한 것으로 해석하여 보았다. 121년 봄 유주자사 풍환과 현도태수 요광 등은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이때 고구려는 후한에 거짓으로항복하였는데 그 이유가 宮이 사망하였다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정보를 ‘嗣子’ 遂成이 使者를 보내는 형식으로 전달하였다. 요광은 宮이 사망한 틈을 타 고구려를 공격하자고 上言하였는데, 이때 고구려는 몰래 군사를내어 요동을 역습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고구려는 동년 4월 당시 유주자사와 현도태수가 가짜 璽書 사건에 연루되어 후한의 요동 정세가 혼란해진 틈을 이용하여 다시 요동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결국, 『후한서』 고구려전에서 전하는 태조대왕의 사망 연도는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되며, ‘是歲宮死’ 사건은 121년 고구려의 요동 공격에서 나타난 策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本稿は、『後漢書』の高句麗伝に記録された宮[太祖大王]の没年を、その死亡を伝える情報 と直接的な関連のある玄菟太守姚光の没年問題と比較し検討して、その妥当性を分析し、こ れを121年の高句麗の遼東攻撃の様相と結びつけて考察した論文である。 建光元年(121)、宮が死亡した時に、これを利用して高句麗を攻撃しようと上言した人物 は姚光である。姚光は同年の4月に死亡した。ところで、『後漢書』の高句麗伝には、4月の以 後にも宮が高句麗軍を指揮している様相が確認されている。ここに、姚光の死亡年度は「建 光」元年(121)ではなく、「延光」元年(122)であったと解釈する見解も提起されている。しか し、姚光と同じ年月に死亡した幽州刺史馮煥の死亡が記録されている「馮煥残碑」によれば、 馮煥が「永寧2年」、つまり建光への改元があった前の121年の4月に死亡したとされる。よっ て、姚光の死亡年度は121年であり、『後漢書』の高句麗伝記録された太祖大王の死亡時期に は矛盾があると言える。 ここでは、「是歳宮死」の記録を、121年に高句麗が遼東を攻撃した時伝えられた虚偽の情 報に基づいたものとして解釈してみた。121年の春、幽州刺史馮煥と玄菟太守姚光等は高句 麗を攻撃した。その時、高句麗は後漢に詐降したが、その理由は宮が死亡したからであった。 そのような情報は「嗣子」遂成が送った使者により姚光等に伝えられた。姚光は宮が死亡し たのを利用して高句麗を攻撃しようと上言したが、この時、高句麗はひそかに軍隊を送って 遼東を逆襲するのに成功した。以後、高句麗は同年の4月に、幽州刺史と玄菟太守が偽の璽書 事件に連累されて混乱になった後漢の遼東の情勢を利用して、再び遼東を攻撃した。したが って、『後漢書』の高句麗伝に記録された太祖大王の没年は信憑性に欠ける記事であり、「是 歳宮死」の事件は高句麗の遼東攻撃のための策略の一つであったとい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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