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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 辛卯年條 ‘來渡海破’ 판독의 문제와 그 함의

Problem and Implication of the Deciphering of “來渡海破” in The Article of Sinmyo Year(辛卯年條) in the Epitaph of King Gwanggae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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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공개된 광개토왕비 실물 사진 자료를 이용하여 辛卯年條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來渡[海]破’ 부분의 판독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기존 탁본에서 자획으로 인식되었던 ‘海’ 글자 부분의 좌하단 획이 실제로는 자획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해당 흔적은 광개토왕비 표면에 형성된 여러 단층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또한 광개토왕비 탁본 이미지를 실물 사진 위에 겹쳐 올려 비 표면의 단층 및 굴곡과 탁본 상에 표출된 흔적을 대조하는 작업을 수행한 결과 논란이 많았던 해당 글자는 ‘[海]’로 판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來渡[海]’의 구절이 한문 문법상 성립하기 어렵다는 선행 연구에서의 지적을 검증하기 위하여, 과거 문헌들의용례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국내외 사서에서 ‘來渡海’, ‘來渡河’, ‘來渡江’ 같은 용례를 다수 확인하였고, ‘渡海而來’, ‘渡海來’, ‘渡海來征’, ‘渡海撃破耽羅’ 같은 용법의 사례도 발굴하여 ‘來渡[海]破’ 구절이 성립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논란의 신묘년조 내용은 있는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 인정하기 어렵다. 倭가 ‘破百殘’하였다는 내용은 아신왕사후 전지왕의 왕위 계승 과정에서 왜의 병력이 동원되어 백제 경내에 진입한 사건을 과장하여 서술한 것으로 파악된다. 신묘년조는 광개토왕이 즉위와 동시에 수행한 대백제 군사 작전 및 한반도 남부에서의 대왜 군사 활동에사후적으로 명분을 부여하기 위하여, 414년 당시 고구려인들이 지니고 있던 역사적 기억을 편의적으로 왜곡하여작성한 것으로 이해된다.

Abstract

This study did the deciphering work of the part, “來渡[海]破,” which is the most controversial in The Article of Sinmyo Year (辛卯年條) using the real photographic materials of the epitaph of King Gwanggaeto released a few years ago. As a result, the bottom left stroke of “海,” recognized as a stroke in the existing rubbed copy was judged to be not a stroke in a Chinese character. The trace came under the boundary of several faults formed on the surface of the epitaph of King Gwanggaeto. As a result of the work of contrasting the faults and bends on the surface of the stele and the traces exposed on the rubbed copy by putting the rubbing image of the epitaph of King Gwanggaeto over the real picture, the relevant letter could be deciphered as “海.” The comment that it would be difficult that the line, “來渡[海]” would be difficult to be valid by the Chinese grammar was verified through an analysis of usages. As a result, in domestic and international history books, a number of examples like “來渡海”, “來渡河”, and “來渡江” were found, and examples of usages, like “渡海而來”, “渡海來”, “渡海來征”, and “渡海撃破耽羅” were also discovered. Thus, the validity of the line, “來渡[海]破” was verified. It is difficult to recognize the contents of the Article of Sinmyo Year as historical facts as they are. It is judged that the content of “破百殘” of Japan (倭) was a description that exaggerated the incident of the mobilization of the Japanese Army during the process of succession of King Jeonji(腆支王) of Baekje to the throne after the death of King Asin(阿莘王) of Baekje. It is noted that the Article of Sinmyo Year was drawn up by mixing the historical memories in the Goguryeo people in 414 for convenience in order to give a justification to the military actions performed by King Gwanggaeto after the 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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