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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ㆍ양만춘을 바라보는 인식의 계보

The Changing Perceptions of Ansi Castle and Yang Man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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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안시성과 양만춘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에 대해 살폈다. 고려 시대 안시성은 승리의 공간인 동시에 중국의 황제에게 충의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로 인식되었다. 조선 시대 이후에는 연행사들에 의해 안시성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안시성주에게 전쟁에서 승리한 ‘호걸’이자 중국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유학적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충신’의 이미지를 투영하였다. 한말 교과서에서 안시성과 양만춘에 대한 서술은 전통적인 방식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았으나, 1900년을전후하여 출간된 교과서에서는 점차 ‘자주의식’을 고취하는 소재로 활용되었다. 반면 일제시기 교과서에서는 한국사의 타율성을 강조하면서 안시성 전투도 중국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남과 북 교과서 모두에서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전보다 과격한 표현이 등장하고, 승리의 의의가 과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 콘텐츠에 등장하는 안시성과 양만춘은 해당 소재를 다루는 미디어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기왕에 대중들이 갖고 있는 고구려에 대한 역사상을 더욱 강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구려의 다채로운 역사에 대해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및 역사 콘텐츠를 통해 형성되는 이미지의 경계선에 대한 끊임 없는 환기가 필요하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changing perceptions of Ansi Castle and Yang Man-Chun between the pre-modern and post-modern periods. During the Goryeo period, Ansi Castle was perceived as a space of victory and an example of loyalty to the Chinese emperor. After the Joseon Dynasty, the position of Ansi Castle was actively debated by Confucianist. The lord of Ansi Castle was portrayed as both a war-winning “hogeul” and a “loyalist,” fulfilling the Confucian value of paying homage to the Chinese emperor. The narratives of Ansi Castle and Yang Man-Chun in Korean textbooks often remained traditional, but in textbooks published around 1900, they were gradually used as materials to promote ‘self-reliance’. On the other hand, textbook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mphasized the batting average of Korean history, and the Battle of Ansi Castle was viewed from a Chinese perspective. After liberation, both North and South Korean textbooks emphasized nation and ethnicity, and the significance of the victory was more radicalized than before. The appearance of Ansi Castle and Yang Man-Chun in historical content often reinforces the public's historical view of Goguryeo, albeit to varying degrees depending on the media covering the subject. In order to be able to imagine the colorful history of Goguryeo, there needs to be a constant reminder of the boundaries of the image formed through textbooks and historical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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