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과 친일파의 대응 양태
March First Revolution and the confrontational aspect of pro-Japanese collaborators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1919년의 3․1혁명은 제국에서 민국으로의 전환을 가져온 일대사건이었다. 3․1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제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과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의 실현이라는 민족혁명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혁명의 꿈은 민족혁명에만 그치지않았다. 3․1혁명은 국민이 주권을 갖는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제가 우리 역사에서 처음 실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3․1혁명은 민주혁명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혁명은 혁명에 대한 반동 곧 반(反)혁명을 수반한다. 3․1혁명도 반혁명에 직면했다. 3․1혁명이 이루려고 한 민족․민주혁명의 일차적인 반대세력은 식민통치권력이었다. 일제는 비무장의 만세시위대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했다. 그 와중에 수천 명이 학살되었고 수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3․1혁명의 반대편에 선 것은 일제만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3․1혁명을 거족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3․1혁명에 참여했다. 그러나 3․1혁명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나아가서는 3․1혁명에 반대한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친일파가 그랬다. 3․1혁명은 민족․민주혁명을 추구한 민족운동 세력과 반민족․반민주의 길을 걸은 친일파의 분화가 본격화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3․1혁명은 민족운동에도 새로운 전기가 되었지만 친일파에게도 일제 식민통치의 동반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친일파는 그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친일파는 일제의 강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친일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다. 친일파에게도 나름의 친일 논리가 있었다. 특히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에서도 유력한 정치세력이 되기를 원했던 친일파의 경우는 더 그랬다. 이러한 의미에서 3․1혁명은친일파에게도 강제병합 못지않은 일대사건이었던 것이다. 일부의 친일파는 3․1혁명으로 조성된 일제 식민통치의 위기를 자신들의 정치적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파악했다. 그러면서 3․1혁명 이후 일제가 추진한 친일파의 육성이라는 새로운 정책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려는 했다. 친일파는 각종 매체를 통해 3․1혁명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는 한편 더 나아가서는 노골적으로 3․1혁명 저지를 내건 단체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기꺼이 반혁명세력이 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3․1혁명 이후 일제가 표방한 문화정치 아래 친일파는 참정권운동 등의 활발한 정치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3․1혁명은 역설적으로 반혁명세력인 친일파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로도 작용한 것이다
Abstract
Every revolution in the world is accompanied by a reaction to the revolution,so-called counterrevolution. March First Revolution also faced its counterrevolution. Japanese Empire did not stand alone against the Revolution. The pro-Japanesecollaborators also opposed the revolution and refused to participate in it. MarchFirst Revolution became a turning point for a National revolution in Korea underJapanese colonial rule and simultaneously a political opportunity for the pro-Japanesecollaborators. The pro-Japanese actively tried to make the opportunity real. Theyrealized the crisis of Japanese rule as a chance to get their political desires in Korea. The pro-Japanese collaborators clearly stated that they opposed March FirstRevolution and took the head in stopping it. Under the cultural rule that hadproclaimed by the Japanese Empire since the Revolution, the pro-Japanese ledpolitical movements such as suffrage movement. For this reason, March FirstRevolution also served as a momentum to strengthen the political power of thepro-Japanese collaborators in Korea.
참고문헌 (29)
- "매일신보", ~
- "시사신문", ~
- "京城日報", ~
- "思想彙報", ~
- "國民協會史 第1", 國民協會本部, ~ (1921)
- "친일문제연구총서 1-3 친일인명사전" (2009), 민연
- 강덕상, "몽양 여운형 평전" (2007), 역사비평사
- 강창일,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과 대아시아주의" (2002), 역사비평사
- 김윤정, "조선총독부 중추원 연구" (2011), 경인문화사
- 김정인, "국내 3․1운동-중부․북부" (2009),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 김종준, "일진회의 문명화론과 친일활동" (2010), 신구문화사
- 김진호, "국내 3․1운동-남부" (2009),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 大東國男, "李容九の生涯: 善隣友好の初一念を貫" (1961), 時事通信社
- 대한민국임시사료편찬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 4(임정편 Ⅳ)" (1974)
- 박종린, "『공영』을 통해 본 대동동지회의 활동과 친일논리", 역사와 현실, (69), pp.75~102 (2008), 한국역사연구회
- 石川遼子, "‘地’と‘民’と‘話’の相剋", 朝鮮史研究会論文集, 35 (1997)
- 小路田泰直, "日本史の思想-アシア主義と日本主義の相剋" (1997), 柏書房
- 小熊英二, "單一民族神話の起源" (1995), 新曜社
- 윤주한, "3․1운동기 자제단의 등장과 활동", 석사, pp.2017
- 이준식, "‘운동’인가 ‘혁명’인가-‘3․1혁명’의 재인식", 역사와 책임, 7 (2014)
- 이준식,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념적 지향 - 대한민국임시헌장(1919) 해석을 중심으로 -", 인문과학연구, (24), pp.53~82 (2017), 인문과학연구소
- 이준식, "특집 : 민족해방운동의 유산과 민주화운동", 역사와 현실, (77), pp.145~178 (2010), 한국역사연구회
- 이태훈, "『시사평론』을 통해서 본 국민협회의 근대국가인식과 참정권청원론", 역사와 현실, (69), pp.103~133 (2008), 한국역사연구회
- 이태훈, "일제하 친일정치운동 연구 : 자치·참정권 청원운동을 중심으로", 박사, 사학, pp.2010
- 임경석, "3.1운동기 친일의 논리와 심리 ― 『매일신보』를 중심으로 ―", 역사와 현실, (69), pp.47~74 (2008), 한국역사연구회
- 임경석, "운양 김윤식의 죽음을 대하는 두개의 시각", 역사와 현실, (57), pp.81~109 (2005), 한국역사연구회
- 차문섭, "3․1운동 50주년 기념논집" (1969), 동아일보사
- 千葉了, "三․一事件後の朝鮮に赴任して", 東洋文化硏究, 5 (2003)
- 한명근, "일진회의 대일인식과 ‘정합방’론", 숭실사학, 14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