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의 여진과 조선 사회 -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를 중심으로 -
The Aftershock of the March First Revolution’and Jose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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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3․1혁명 직후의 열기가 언제, 어느 정도까지 이어졌고, 그것이 조선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사회사적 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다. 1919년 5월 들어 만세시위가 사라지면서 혁명적 국면이 종결되었다. 그러나 3․1혁명이라는 대지진이 낳은 여진은 지속되었다. 조선인들은 당국 시책을 거부했고 일본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등 일상에서의 저항을 계속했으며, 조선 사회에는 일종의 심리적인 ‘해방구’가 조성되었다. 많은 이는 파리강화회의와 윌슨에 기대하고 일․미전쟁을 꿈꾸며 독립을 바랐다. 동시에 혁명 직후 시위 참가자 및 희생자에 대한 지역 공동체의 동정과 추모 열기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공통된 경험은 1920년대 탄생한 청년회와 각종 단체, 지역주민운동에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조선독립 불가능론을 말하며 시위에 반대하거나, 혁명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파리강화조약이 체결된 이후 독립 청원과 만세시위로 독립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면이 전환되었다. 먼저 1919년 후반기 들어 무장투쟁론과 독립전쟁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었다. 상하이임시정부와 간도․연해주의 독립운동단체는 비밀조직을 만들고, 조선인 부호들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요구하거나 관리들에게 사직을 강요했다. 다른 한편으로 직접적인 독립 달성이 아닌 새로운 움직임도 모색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조선인 차별대우 해소를 기대하거나, 조선에서의 자치권 부여를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인 자산을 흡수해 조선인만의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움직임, 조선인의 은행과 회사를 설립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졌으며, 이는 1920년대 초 경제운동으로 연결되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how the March First Revolution’s intensity continued, and how it influenced Joseon society from a social historical approach. In May 1919, as the Manse demonstrations ended, the revolution came to an end. However, the aftershock that was the March First Revolution continued to reverberate. Koreans rejected the policies of the authorities and did not act furtively to the Japanese, continuing the resistance. Furthermore, a psychological “haven” was created in Joseon society. Many people eagerly waited for the Paris Peace Conference and T. Woodrow Wilson, hoping for a war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and ultimately the independence of Korea. At the same time, after the revolution, there was sympathy of the local community and the fervor for mourning for the participants and victims of the demonstrations. The common experience of the people became the foundation for various organizations and local residents’ movements that started in the 1920s. Joseon society also witnessed the emergence of people who opposed the demonstrations, the impossibility of the independence of Joseon, and people who were weary of the revolution. After the signing of the treaty at the Paris Peace Conference, independence of Joseon was not fulfilled even through a petition for independence or through Manse demonstrations, which reverse the course. First, in late 1919,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in Shanghai(上海臨時政府) and independence movement association of Jiandao(間島) and the Primorsky Krai(沿海州) created a secret organization, and expanded the armed struggle, through funds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from wealthy Koreans and coerced resignations of Korean administrative officials in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On the other hand, there were new movements that did not aim for a direct independence. There was a rise from the people who were politically discriminated and those who argued for a right of autonomy in Joseon. From an economic perspective, the movement created a Korean economy by absorbing the wealth of Japanese as well as starting Korean banks and companies, which led to the economic movement in the early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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