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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보국대의 의미와 성격

The Characteristics of the ‘Bogukdae’, during th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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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한국전쟁 동안 민간인은 군에 동원되어 노무력을 제공했다. 군과 민은 이러한 민간 노무인력 동원 및 전쟁 지원 행위를 ‘보국대’라고 칭했다. 그러나 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이 휴전에 이르기까지, 실체성이 있는 하나의 국가행정조직으로서 ‘보국대’라는 것은 없었다. 따라서 보국대는 법제적 근거가 없는 구어적 표현이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전쟁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노무를 위해 동원된 개인과 그 집단을 ‘보국대’ 또는 ‘보국단’이라고 일컫는다. 본고는 이처럼 국가기구가 아님에도 전쟁당시 두루 사용되었던 ‘보국대’의 특성과 성격을 확인하는 것이다. 연구의 첫 단계는, 어의적 특성과 계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어의적 특성이란 ‘보국’이라는 표현이 과거부터 어떻게 쓰였고 기록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조직을 이르는 ‘隊’와 접목되어 ‘보국대’로 실체화되는 현상을 추적한다. 그런데 보국의 수사가 집약되어 조직화되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근로보국대’가 유일한바, 한국전쟁기의 보국대는 일제의 그것에 적어도 어의적 계보의 연결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어서는, 한국전쟁을 겪은 인물의 회고에서 ‘보국대’가 어떤 모습으로 재현되는지를 살핀다. 회고자는 크게 민간인 노무자, 사병, 장교 출신자로 구분된다. 각각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보국대의 모습과 성격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회고에서 주목되는 점은 그들 대부분이 보국대를 전시 군경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국전쟁기 보국대는 단지 일제의 총동원체제기 전쟁 장치였던 근로보국대와 어의적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하고 운용하는 형태와 그 인식까지도 매우 닮았다. 따라서 보국대는 전시근로동원에 대한 법제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던 당시, 대중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던 가까운 과거의 일련의 전시 민간인 동원 기법이 소환된 것으로, 일제가 남긴 또 하나의 잔재이다.

Abstract

During the Korean War, civilians were mobilized to the military for provide labor. The military and the civilians have called these acts of mobilizing civilian laborers and supporting the war as a ‘Bogukdae’. From liberation to the Korean War, however, there was no such thing as a substantive national administrative organization ‘Bogukdae’. Therefore, it was a colloquial expression with no legal basis. And in the course of retrospecting the war, the individuals and their groups mobilized for labor is also called as ‘Bogeukdae’ or ‘Bogeukdan’. This thesis confirms the characteristics of the ‘Bogeukdae’, which was used throughout the Korean War even though it was not a national organization. The first step in the study is to identify the linguistic characteristics and genealogy. The linguistic characteristic is to identify how the term ‘Bogeuk’ was used and recorded in the past. And also tracks the phenomenon of being ‘Bogeukdae’ with a ‘corps’ attached to the ‘Bogeuk’. Japanese Empire’s ‘Civilian Labor Corps(勤勞報國隊)’ is the only one, which integrate the meaning of ‘repay for nation’ to real organization. The ‘Bogukdae’ which was called during the Korean War is believed to have at least the link between the linguistic connection about the Japanese Empire’s ‘Civilian Labor Corps’. Soon after, in the memoirs of those who went through the Korean War, we can see how ‘Bogukdae’ is recreated. Retrospective people are divided into civilian laborers, enlisted men and army officers. These distinctions give a three-dimensional picture of the figure and character of ‘Bogukdae’ from each social status. Noteworthy thing in their memoirs is that most of them remember “Bogukdae” as being forced by wartime military and police. As such, ‘Bogukdae’ during the Korean War is not only connected linguistically to the ‘Civilian Labor Corps’, which was a war device under the Japanese Empire, but also very similar to the way it was organized and operated. Thus, ‘Bogukdae’ is another remnant left by the Japanese Empire, that was summoned for a series of wartime civilian mobilization techniques of the near past, that were in the public’s memory at the time when legal grounds were not laid for wartime wo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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