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考證學과 閻若璩
A Study on the influence of yánruòqú’s bibliographical study in lat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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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閻若璩(1636-1704)의 考證學이 조선후기 경학에 미친 영향력을 검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조선후기 지식인은 당시 淸나라의 고증학보다는 주자학과 관련이 있는 明末淸初의 고증학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염약거의 고증학 수용이다. 염약거의 학술서는 『尙書』ㆍ『四書』 등 경전에 대한 기존의 의혹과 오해를 고증학적 연구방법으로 해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조선 지식인은 『四庫全書簡明書目』ㆍ毛奇齡ㆍ徐乾學ㆍ魏禧 등의 저술을 통해 염약거와 그 저술의 존재를 파악하고는 청나라를 왕래하는 사신을 통해 관련 서적을 입수한다. 『尙書古文疏證』 8책ㆍ『四書釋地』 4권ㆍ『潛邱劄記』 6권 등이 그것이다. 조선후기 지식인이 주목한 염약거의 고증학설은 逸書復元, 言語慣習, 文物制度, 古文僞作, 朱說批判이다. 염약거는 금본 『尙書』가 고본 『尙書』와는 그 체제, 구성, 문자 등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輯逸과 校勘을 통해 고본 『尙書』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염약거는 경전과 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언어관습과 문물제도 등이 경전의 문구를 해석하는 단서가 된다는 점을 간파한다. 또한 염약거는 주자가 의혹한 이래로 학계의 논란이 된 『古文尙書』의 위작을 확정한 바 있는데, 조선 지식인은 주자의 정설을 지지하기 위하여 이를 수용한다. 끝으로 염약거는 여느 명말청초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유가의 실천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 근거를 제공하는 경학 연구에 전념하는데, 특히 주자설의 실증적 오류를 비판하고 보완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다. 조선 지식인은 대체로 염약거의 고증학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단지 비평하거나 참고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발전시켜 새로운 논의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조선후기 염약거 고증학 수용 양상은 조선 지식인이 주자의 실증적 학문태도를 이해하고 일부 실증적 결함을 보완하여 주자학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참고하기에 적절한 학설로 인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research the influence of yánruòqú(閻若璩)’s bibliographical study in late Chosun Dynasty(朝鮮後期). Orthodox-neo-confucianists of the Joseon Dynasty had a great interest in a bibliographical study of late Ming and the early Qing dynasties because it related to Orthodox-neo-confucianism(朱子學). Embracing yánruòqú(閻若璩)’s bibliographical study can be an example. The purpose of him study is to explain academic questions of chineses classics. Joseon’s neo-confucianists often saw scholarly tomes of late Ming and the early Qing dynasties on yánruòqú(閻若璩)’s bibliographical study, and purchased his scholarly tomes from envoys of Qing dynasties such as chángshūgǔwénshūzhèng(尙書古文疏證), Sìshūshìdì(四書釋地), qiánqiūzhájì(潛邱劄記). After researching yánruòqú's influence of late Chosun Dynasty. we can see the following facts. Excavating and restoring complete books of chineses classics based on thorough historical research. Sheding light on important clues of curation of Confucian texts such as cultural practices, languages, customs. Making up for the weak points in theoris of Orthodox-neo-confucianism through his theoris of chineses classics. Joseon’s neo-confucianists responded positively to theoris of yánruòqú(閻若璩)’s bibliographical study, and developed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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