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末⋅淸初 考證學의 淵源 考察 − 黃宗羲⋅顧炎武⋅王夫之를 중심으로 −
明末淸初考證學淵源之探討 - 以黃宗羲、顧炎武、王夫之為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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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明末⋅淸初 고증학자들은 考證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이론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를 통해 현실비판과 제도개혁을 시도했다. 이러한 학술사조의 등장원인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원인’으로 보는 견해, ‘이론 내적요인’으로 보는 견해, ‘漢學과 宋學 논쟁의 한계를 극복한 결과’로 보는 견해, ‘서구 과학기술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대략 4가지 의문을 가지고 청대 고증학의 연원을 검토했다. 첫째, 청대 고증학자들은 왜 文字學⋅音韻學과 같은 小學을 중요시했는가? 둘째, 그들은 애초부터 철학개념에 대한 담론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셋째, 그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학술적 목적은 무엇인가? 넷째, 청대 철학사에서 인식론의 변화는 어떤 방법으로 입증될 수 있는가? 등이다. 본 연구에서 검토한 청대 고증학의 형성과 전개과정에 나타난 특징과 성격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청대 고증학은 宋明理學에 대한 반발로서 經典을 연구하고 先王의 제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經學史의 차원에서만 본다면, 송명이학은 명말⋅청초 시기 그 합법성과 권위를 상실했다. 따라서 청대 고증학자들은 經學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乾嘉시기에 이르러 戴震과 같이 ‘文字考證’의 방식으로 宋學의 주제를 부활시키거나 아니면 章學誠처럼 역사학의 범위에서 고증의 절대권위를 허물거나 漢代 경학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경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둘째, 청대 고증학은 先王의 儀式과 制度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역사변화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청대 경학가들은 三代의 典章制度를 종합하고, 그 理想을 실현하고자 했다. 또한 先王의 禮制와 인간의 욕망을 종합하여 必然과 自然, 理⋅慾의 관계를 내재적으로 연관시켜 욕망긍정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六經은 모두 歷史’라는 것과 ‘道와 器는 하나’라는 명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宋明理學의 天理와 心性을 비판하여 두 개의 가치를 합일시키는 방식으로 경학연구를 전개했다. 셋째, 청대 고증학은 宋明理學에 내재된 유학의 근본원리인 ‘修己治人’의 合一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程朱⋅陸王의 핵심개념인 天理⋅心性은 ‘추상적’⋅‘내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天理를 도덕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사유체계에서는 현실비판이 사회개혁으로 연결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현실적 좌절에 직면한 理學家들은 필연적으로 선진유학의 ‘內聖外王’ 원리를 학문방법에 적용하여 내면적 수양과 사회적 실현의 모순관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經學=理學’의 개념으로 정립되어 ‘經學이란 형식이 없이 理學의 목표달성은 불가능하다’라는 관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理學’의 실현방법으로서 ‘經學’이 공인됨에 따라 淸代 중⋅후기에 이르러 고증학적 연구방법은 小學과 文字學 등 다양한 학문분야 발전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Abstract
明末清初考据学家試圖通過考據的方法了解歷史, 通過理論的新概念化進行現實批判和制度的改革. 對於這種學術思潮的产生原因, 歷來有‘政治原因’、‘理論的內在原因’、‘突破漢學與宋學論爭局限的結果’、‘西歐科學技術的影響’等看法. 本研究從下列四個問題意識探討了清代考據學的淵源. 第一, 清代考據學家為何看重文字學、音韻學等小學? 第二, 他們是否根本沒有認同哲學概念的論述? 第三, 他們想要實現的學術目的為何? 第四, 清代哲學史上認識論的變化可從哪些方法得到證明?本文所探討的清代考據學的淵源大約可整理為如下三點. 第一, 清代考據學做為宋明理學的反動, 在研究經典恢復先王制度的過程中出現. 單從經學史方面來看, 宋明理學在明末清初就失去其合法性與權威, 清代考據學家欲打破經學的束縛摸索新的出路, 結果就出現了兩種經學研究: 如戴震一樣用‘文字考證’的方式重新提起宋學的主題, 或如章學誠一樣在歷史學的範圍打破考據的絕對權威以及強調漢代經學的價值. 第二, 清代考據學在認同先王的儀式與制度, 以及重視歷史變化的過程中产生. 清代經學家綜合三代的典章制度, 欲實現其理想. 而且綜合先王的禮制與人的慾望, 內在聯繫必然與自然、 理⋅慾的關係, 使之發展為慾望肯定論. 此外他們試圖了解‘六經皆史’、‘道器一體’的命題, 批判宋明理學的天理與心性論, 並試將天理與心性這兩個價值予以合一的方式展開經學研究. 第三, 清代考據學在力求‘修己治人’-內在於宋明理學的儒學核心原理-的合一的過程中出現. 程朱⋅陸王的核心概念-天理⋅心性-具有‘抽象’⋅‘內在’的属性, 在這種把天理視為道德源泉的思維體系中, 其現實批判很難直接連接為社會改革. 面對這種現實挫折的理學家必然適用‘內聖外王’-儒學經學觀的核心原理-為學問方法, 試圖突破內在修養與社會實現的矛盾關係. 這種努力就確立為‘經學=理學’的概念, 形成了‘沒有經學的形式就不可能達到理學的目標’的觀念. 後來, 做為‘理學’之實現方法的‘經學’在得到公認後, 淸代中後期考據學的研究方法對小學和文字學等各種學問發展也起到了相當的作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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