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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과 그 공부에 관한 정조와 정약용의 문답 연구- 호락논쟁과 관련하여 -

King Jeongjo’s Inquiry and Jeong Yakyong’s Response on the Not-Yet Aroused State in Mind and the Self - Cultivation-With Reference to Horak Deb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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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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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朝는 朱熹가 聖人과 衆人의 未發이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르다고 말하기도 한 것에 대하여 일관적이지 않은 모순이라고 여겨 정약용에게 질의했다. 이것은 호락논쟁의 쟁점이었는데 성인의 미발은 항상 中이지만 중인의 미발은 不中이면서도 중일 때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인과 중인의 미발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정조의 질의에 대하여 정약용은 미발은 중인에게 없고, 성인에게만 있다고 답변하였다. 또한 주희는 미발을 復卦라고 말하기도 하고, 坤卦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정조는 주희의 말이 일관적이지 않은 모순이라고 생각하여 어떤 것이 주희의 定論인지 丁若鏞에게 질의했다. 이것도 湖洛논쟁의 쟁점이었다 정조의 질의에 대하여 정약용은 곤괘라고 답변하였고, 그것은 洛學 李顯益의 주장과 비슷하였다. 하지만 정약용은 복괘와 곤괘를 미발의 중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는데 왜냐하면 괘는 『周易』, 중과 和는 『中庸』에 나오는 용어로서 반드시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李顯益과 달랐고, 주희 뿐만 아니라 정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주희는 미발시 공부에 대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하여 정조는 어떤 것이 정론인지 정약용에게 질의했다. 이것도 호락논쟁의 쟁점이었는데 이현익은 미발이란 최상의 경지이기 때문에 그 공부가 가능하지 않고 靜의 상태에서 필요한 공부라고 주장한 반면에 朴弼周는 미발시 공부는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고, 당시 낙학의 종장 金昌翕은 박필주를 지지하면서 이현익을 비판하였다. 이에 대하여 湖學의 한원진은 김창흡을 지지하면서 이현익을 비판하였고, 그것이 주목할 만하다. 정조의 질의에 대하여 정약용은 미발시 공부는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고 그 공부를 愼獨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주희 뿐만 아니라 호락과 다른 맥락에서 미발시 공부가 필요함을 주장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희는 신독을 已發공부로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조의 질의와 정약용의 응답에서 전자는 호락논쟁과 주자학에 의심을 통하여 엄밀한 학문을 하였고, 후자는 그들을 넘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King Jeongjo regarded Zhu Xi’s mentions, the Not-Yet Aroused State in Mind of sage and ordinary person is the same or not, as contradiction. This was a controversial issue in Horak debate. That of sage always is equilibrium, whereas ordinary person equilibrium or non-equilibrium, according to Horak scholars. To King Jeongjo’s inquiry, Jeong Yakyong responded only sage has the Not-Yet Aroused State in Mind, whereas the ordinary person not so. Zhu Xi’s the Not-Yet Aroused State in Mind has been described Fuqua (復卦) or Kunqua (坤卦). King Jeongjo also regarded the descriptions of Zhu Xi as contradiction. This also was one of main issues in Horak Debate. At the time, Yi Hyeonik, a Rak scholar, claimed the State is Kunqua, not Fuqua, and the former is a decided theory in Zhu Xi’s latter years. By contrast, Gwon Sangha and Han Wonjin, a Ho scholar, criticized Yi’s claim, arguing it is not Kunqua but Fuqua. To King Jeongjo’s inquiry, Jeong Yakyong responded it is Kunqua, not Fuqua. This is similar to Yi’s claim. However, he argued the State cannot be described the Kunqua or Fuquau, because the terms are the different Confucian classics. This is different from Yi, and implies criticism of Zhu Xi and King Jeongjo. Also, Zhu Xi said the need self-cultivation in the State or not. For that matter, King Jeongjo inquired which to be a decided theory in Zhu Xi’s latter years. He regarded those of Zhu Xi as contradiction. This also was a main issue in the Horak Debate. At the time, Yi Hyeonik’s claim was not to need self-cultivation in the State because the State is the highest stage. By contrast, Park Pilju’s claim was to need self-cultivation in the State. About their debate, Kim Changhueup supported Park’s claim, criticizing Yi’s. Also, Han Wonjin supported Kim’s claim, criticizing Yi’s. In response to the inquiry of King Jeongjo, Jeong Yakyong’s claim is the need of self-cultivation in the State, and this is “watchful over oneself when one is alone”(愼獨 shendu). The need of self-cultivation in the State is similar to Park and Kim’s claim but self-cultivation as the Shendu is different from. This implies crticism of King Jeongjo’s mention and followed Zhu Xi. In the debate of King Jeongjo and Jeong Yakyong, the former sought an accurte study through criticism of Horak debate and Zhu Xi’s Neo-Confucianism, whereas the latter created a new horizon beyon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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