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상춘문화와 근대 - 벚꽃의 상징 변화를 중심으로 -
Spring celebrations and modernity in Korea and Japan - Focusing on the symbolic change of the cherry tr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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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일 양국에는 예로부터 봄이 되면 꽃을 보고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 한순간에 져버리는 벚꽃의 특징에서 철학적 은유를 찾아낸 일본인들은 벚꽃을 특히 애상하고 심었다. 근세 초기, 벚꽃은 문화의 중심이었던 교토의 상징으로서 교토와 같은 번영을 기원한 번주들에 의해 대량으로 심어지고, 전국 각지에서 그 수를 늘려 나갔다. 유락문화가 발달한 근세 중기 이후에는 단체 꽃구경이 성행하고, 벚꽃의 집객력에 주목한 식수도 행해지게 된다. 막말에 소메이요시노라는 품종이 개발된 이후에는 벚꽃의 식수는 더욱 증가하게 되어, 벚꽃은 일본의 봄을 특징지을 만큼 다른 꽃을 압도하게 된다. 일본의 봄을 상징하게 된 벚꽃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꾀하던 무렵 “일본혼”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일본인의 일본의 선진적인 문화를 이식한다는 개념에서 일본영토의 상징으로 식민지에 벚나무를 심었다. 또 식민지에 이주한 일본인은 내지의 봄을 그리워하며 스스로의 생활환경 주변에는 반드시 벚나무를 심었다. 재조일본인의 증가와 함께 벚나무 식수도 활발해져, 1920년대에는 조선에도 벚꽃 명소가 각지에 생겨나게 된다. 한편 조선에서는 벚꽃에서 특정한 관념을 찾아내지 않았으며, 벚꽃의 계획적인 식수 또한 목재를 위한 예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따라서 일본제국주의와 함께 심어지기 시작하던 벚꽃에 대해, 조선인은 처음부터 일본의 상징으로 파악하고 벚꽃의 보급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벚꽃 또한 봄에 피는 꽃이며, 한국 또한 예부터 봄이 오면 꽃을 보고 즐기던 풍속을 가지고 있던 민족이었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벚꽃이 상징하는 관념에 대한 인식은 옅어지고, 벚꽃은 조선의 봄 풍경 중의 하나로 정착되어, 조선인 또한 벚꽃을 즐기게 되었다.
Abstract
Ever since ancient times, the people of both Korea and Japan have enjoyed viewing spring foliage. In particular, the Japanese found a philosophical metaphor from the characteristics of cherries, which were planted for their cherry blossoms in particular. In early modern times, the cherry tree was planted in large quantities by feudal lords and others who prayed for prosperity. For example, in Kyoto, which was made to be the center of culture and increased the numbers throughout the entire country. Since the development of the Somei-Yoshino variety of cherry tree in the Edo period, planting of cherries increased further, and Sakura soon became synonymous with spring in Japan, eventually overwhelming other flowers. When Japan’s imperialist motivations led it to colonize other countries, Sakura came to symbolize the Japanese spring and was established as a symbol of "the Japanese soul." Under the concept of transplanting the advanced culture of Japan and as a symbol of the country’s territory, Japan planted cherry trees in its new colonies. Korea was no exception to this policy, and the Japanese planted cherry trees there as well, for this reason and also to supply wood to produce archery materials. Therefore, Koreans regarded this as a symbol of Japan from the beginning. Sakura was planted in large quantities along with the advance of Japanese imperialism and was negative to the spread of the cherry tree. It represents the sense of resistance in the form that you can unplug the cherry trees that have been planted, such as criticizing the hedonistic culture of Hanami. However, since cherry trees produce cherry blossoms in spring, and since it was customary to enjoy outdoor festivals and feasts while folding flowers in Korea to celebrate the coming of spring, the cherry as a symbol of Japan lessened and Sakura even became a part of the Korean spring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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