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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반 소유 개념과 사유재산 담론

The Concept of Ownership and Private Property Discourse in the Early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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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920년대는 한국 자본주의 성립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시기다. 1912년 조선 민사령 공포, 1918년 토지조사사업 완료 등을 거치면서 토지를 비롯한 주요 자산의 사적소유권이 법적,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 사적 소유권과 사유재산은 오랜 관습이자 새로운 현실이기도 했다. 왕토사상에도 불구하고 이미 조선 중반부터 경작지와 대지등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식민지 시기 제도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1920년대 초반은 소유 개념, 사유재산 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이를 주도한 것은 새롭게 유입되기 시작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등의 좌파이념들이었다. 이들 좌파 담론들은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담론이었기에 사적 소유권에 대한 비판을 주도했다. 특히 1920년 노동공제회를 비롯한 노동관련 단체들이 대거 출현했고 노동 개념은 소유 개념과 치열한 신성경쟁을 벌이기도했다. 소유 대신 노동 개념이 세계를 창조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적 동력이라는주장은 부르주아 계몽 담론과 좌파 담론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20년대 초반 유산과 무산의 대립구도가 등장했다. 이 역시 좌파담론이 주도했던 구도였고 사유재산을 둘러싼 대립을 배경으로 했다. 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이 구도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지향하는 共産의 상상력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프루동이나 헨리 조지에 일본 귀족원까지 등장해 토지의 사적 소유문제에 대한 다양한 대안들이 족출하였다. 分産과 公産,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는 물론 자유주의적 전망 하의 다양한 소유제도에 대한 전망들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노농 러시아의 거대한 변화를 배경으로 共産의 헤게모니가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였다.물산장려운동은 공산에 맞선 물산을 제시하는 도발적 전략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에 의해 ‘인민의 아편’으로 지목된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북 기독교 및 유산집단으로부터 출발한 물산장려운동은 3년 여 시차를 두고 경성으로 확산되어 중앙의 유산계급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사회주의 세력 일부까지 규합하여 생산력주의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더 많은 물질적 재화, 더 높은 생산력에 대한 욕망의 정치가 좌우를 넘나들며 작동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Abstract

The 1920s are a foundational period in the establishment of Korean capitalism. After the promulgation of the Joseon Civil Code in 1912 and the completion of the land survey project in 1918, private ownership of land and other major assets was established both legally and in practice. Private ownership and private property existed by traditional custom, and also as a new reality. Despite the prevailing Wangto (王土) ideology, private ownership of land, including arable land, began to spread widely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When this was impacted by institutional changes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concepts of ownership and private property emerged as important issues in the early 1920s. Criticism of private ownership arose from left-wing ideologies such as socialism, communism, and anarchism, which saw private property as the central critical discourse of capitalism. Many labor-related organizations emerged in the 1920s, including the Labor Credit Union, which were deeply hostile to the principle of private ownership. These organizations argued that it is not ownership but labor which drives economic development and social progress. A confrontation thus arose between bourgeois enlightenment discourses and proletariat discourses in the early 20s, and the primary field of conflict concerned private property. Left-wingers sought to establish social ownership of the means of production, arguing for a variety of alternative structures to the private ownership of land, including proposals inspired by Proudhon, Henry George, and the Japanese aristocracy. Following the Russian revolution, however, communist ideology became the dominant model. In response, Christian and bourgeois groups in the northwest started the ‘product encouragement’ movement, extolling the benefits of more material goods and higher productivity. This was a provocative strategy to counter Marx’s characterization of religion as “the opium of the people”. Within a few y ears the movement had spread to Seoul, and the most influential bourgeoisie, but it also helped to unite the socialists into a more effective coal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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