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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기 한국 자유주의의 형성과 굴절

The Formation of Liberalism and its Failure in Early 20 th Century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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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과정에서 한국에도 자유주의사상이 소개되었고,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사상적 틀(frame)을 제공해주었다. 이 시기 형성된 개인의 자유와 민족⋅국가의 독립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하는 조화론적 사상기조는 20세기 전반기 동안 지속되었다. 일제강점기 무단통치하에서 폭발한 3⋅1운동은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망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국내의 자유주의적 독립운동은 철저히 억압되었다. 식민통치 상황 속에서 정치적 자유주의운동보다 문화운동으로써개인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담론이 전개되었고, 그것은 전통적 유교문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교적 가족제도 하의 피해자인여성과 청년층의 인권을 회복하고, 사상혁명을 고취하는 신문화건설내지 신사회 건설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1920년대 중후반 소위 ‘문화통치’ 정책 하에서도 자행된 일제의 고문과 언론 탄압에 저항하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쟁취운동이 전개되었다. 노동자와 농민, 청년의 전국조직이 결성되어 이운동의 한 축을 구성하였으며, 변호사들의 조직도 언론자유 획득을 위한 합법 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유력한 신문 잡지들은 이 문제를 식민당국의 부당한 통치의 상징적 이슈로 간주하고 언론자유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팟쇼체제 하에서 이러한 당위적 목표를제기하는 것조차 강한 탄압을 받고 운동은 쇠퇴하였다. 1920년대 이래 사회주의 사상의 흥기로 인해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동일시되며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자유주의적 운동은 자유주의 이름을 표방하지 못하였다. 해방 후에야 ‘자유주의’를 모색하는 시도가나타났지만, 사회주의와 이념적 갈등이 첨예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자유주의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민족주의와의 불안한 연합 속에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존재를 유지하였다.

Abstract

The ideas of liberalism were introduced into Korea in the late 19thcentury,providing an ideological framework for the nation-building of awealthy and strong state. The main characteristic of Korean liberalismformed at this time was the harmonious pursuit of individual liberty andnational independence. After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politicalliberal movements were repressed by Japanese colonial rule. Instead,Korean intellectuals expressed their liberal concerns through cultural aspects,by criticizing dogmatic Confucian culture and by aiming to build a ‘NewCulture’ in which the human rights of the individual were guaranteed. Liberalistic attempts of the early 20thcentury Korea were also expressedas movements of freedom of speech (and of association). Liberalism wasnever accepted affirmatively, and has even been negated as an‘out-of-date’ ideology which advocated capitalist interests while socialismrose as a mainstream ideology in Korea after the 1920’s. Liberalism inKorea existed by providing a supporting role to ‘Liberal Democracy’ andas a collaborator of nationalism after National Liberation in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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