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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자료로 본 백제의 乞乇城 영위 사건의 성격

Characteristics of Baekje’s Geoltagseong Fortress Management Articles from Archaeologic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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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6세기 백제의 가야 진출과 관련된 내용은 당시 가야의 정치적 향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와 관련하여 531년 백제의 걸탁성(乞乇城) 영위 사건은 문헌기록이 고고학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헌사 연구로 본 백제의 걸탁성 영위 목적은 529년 안라의 주도로 개최된 고당회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였고, 530년 전후 가야 남동부지역에 대한 신라의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백제의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근거하여 걸탁성 추정지인 함안을 포함한 남강 하류지역의 고고학적 현상을 살펴보면, 다양한 종류의 백제계 문물이 돌연 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세기 전엽 백제계 문물의 출현은 남강 하류지역의 독특한 현상으로, 고령과 합천지역을 중심으로 웅진~사비기 백제식 묘제와 위세품이 출현하는 대가야권역 보다 빠른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걸탁성의 구체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백제계 문물이 집중되는 양상으로 보아 현재 함안지역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백제가 걸탁성을 영위하게 된 목적과 배경을 고려하면, 마산⋅창원에서 함안 방면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이면서 신라를 견제하는데 효과적인 산인면 일대가 그 유력한 후보지라고 생각된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6세기 전엽 백제가 가야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문헌기록의 일부를 고고자료에서도 밝혀낼 수 있었다. 다만, 그 방식이 일반적인 개념에서 군사적 진출인지, 아니면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점령의 의미가 아닌 정치⋅외교적인 개념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문헌사와 고고학 분야에서 계속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Abstract

The incident related to Baekje's advance into Gaya in the 6th century is an important event to understand the political position of Gaya at that time. In relation to this, the article about Baekje's management into Geoltakseong Fortress is a representative case in which literature records appear as archaeological data in 531. The purpose of the Baekje’s management into Geoltakseong Fortress, as seen through literature history study, was not satisfactory with the results of the Godang Conference, which was held under the initiative of Anra in 529. It can be understood that it showed Baekje's strong will to respond, which needed to be put under pressure as Silla's advance into the southeastern part of Gaya began in earnest around 530. Based on this historical background, looking at the archaeological phenomenon of the lower Nam River area including Haman, which is presumed to be Geoltakseong Fortress, it can be seen that various kinds of Baekje culture are suddenly appearing. The emergence of Baekje culture in the early 6th century is a unique phenomenon in the lower Nam River region. This incident occurred earlier than in the Daegaya region, where Baekje’s tombs in Woongjin-Sabi period and noble items appeared in earnest in Goryeong and Hapcheon. The location of Geoltakseong Fortress has not yet been revealed. Considering the pattern of concentration of Baekje culture, it is judged that it is clearly the Haman region. And considering the purpose and background of Baekje's management into Geoltakseong, the Sanin-myeon area, which is the only route from Masan and Changwon to Haman, and effective in oppressing Silla, is considered to be a strong candidate site. The influence of Baekje in the Gaya region in the early 6th century was revealed through archaeological data. However, whether the method is a military advance from a general concept or whether it can be evaluated as a management with a strong political and diplomatic color as a means of oppressing Silla is an area that needs to be continuously studied in the field of literature history and archeology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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