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백제계 문물의 수용과 번안으로 본 대가야의 지배방식

The governance of Daegaya seen through the acceptance and adaptation of Baekje style culture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6세기 대가야 지배층은 당시 백제문화를 선진적인 본보기로 인식하여 단순 교류의 수준을 넘어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노력하였고, 결과적으로는 국가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적 수단으로까지 활용하였다. 이는 이전 시기와 같이 백제계 위세품을 통해 지배층의 권위와 우월성을 상징하려는 목적이 아닌 백제계 문물을 번안하여 이를 권역 내부에서 공유하는 현상에 해당하며, 대가야 지배층이 주도한 지방지배 방식의일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가야권역 내 백제문화의 수용양상은 백제계 횡혈식석실과 함께 그들의 상장의례까지 직접 이입된 중앙, 그리고 지방은 백제계 횡혈식석실을 번안한 고아동식 횡혈식석실이 분포하고 있는 핵심지역, 백제계 청동용기와 마구류가 세트를 이루며 부장된 경계지역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중앙-지방(핵심지역, 경계지역)의 수용양상 차이를 알 수 있었고, 당시 권역 내부에서도 대가야양식이 강하게 발현되고 있는 지역 또는 대규모 고분군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세기 대가야와 신라는 낙동강을 경계로 강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고, 대가야는 이를 극복함과 동시에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에 당시 백제 지배층이 소유한 제도와 문물은 대가야지배층의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고, 이를 모델로 하여 위기 극복과 함께 국가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당시 백제 중앙에서는 횡혈식석실을 지방지배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청동용기 또한 번안품을 활용하여 지방지배에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선진문물을 활용한 대가야 지배층의 여러 움직임은 지방지배 방식에도 반영되었고, 지금까지 그 내용이 고고자료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e ruling class of Daegaya in the 6th century recognized Baekje culture as an advanced case and tried to actively accept it. As a result, it was even used as a political means to promote national growth. However, this is not the purpose of symbolizing the authority and superiority of the ruling class through Baekje style prestige items as in the previous period. It corresponds to the phenomenon of adapting Baekje culture and sharing it in core areas within the region, and it can be understood as an aspect of local governance led by the ruling class of Daegaya. The acceptance pattern of Baekje culture in the Daegaya region was divided into the central area where Baekje style stone chambers and their funeral rites were directly imported, And the core area where Goa-dong type stone chambers adapted from Baekje style stone chambers were distributed. Lastly, it was set as a boundary area where Baekje style bronze bowls and harnesses formed a set and were buried. Through this, it was possible to find out the difference in acceptance patterns between the central area, the core area and the boundary area. In addition, it was found that this phenomenon was observed in the region where the Daegaya style was strongly expressed or in large-scale ancient tombs within the region at the time. In the 6th century, Daegaya and Silla were creating strong tension with the Nakdong River as the boundary. Therefore, Daegaya overcame this and at the same time sought various ways to develop one step further. Accordingly, the system and culture owned by the ruling class of Baekje at that time would have served as an example for the ruling class of Daegaya, and may have laid the foundation for entering the state stage using this as a model. At that time, the center of Baekje was using the horizontal stone chamber as a means of local governance, and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bronze vessel was also used for local governance by using an adapted product. As such, various movements of the ruling class of Daegaya using advanced civilization were reflected in the local governance method, and it was confirmed that the contents were gradually appearing in the archaeological materials so far.

참고문헌 (46)

  1. 권오영, "고대 동아시아 문명 교류사의 빛 무령왕릉" (2005), 돌베개
  2. 권오영, "횡혈식석실분의 수용과 고구려 사회의 변화" (2009), 동북아역사재단
  3. 權五榮, "慶南의 加耶古墳과 東亞細亞" (2010), 경남발전연구원역사문화센터
  4. 陜川 玉田古墳群 Ⅴ, "경상대학교박물관", ~ (1995)
  5. 宜寧 景山里古墳群, "경상대학교박물관", ~ (2004)
  6. 진주 수정봉 고분군, "(재)경상문화재연구원", ~ (2022)
  7. 高靈古衙洞壁畵古墳實測調査報告, "계명대학교박물관", ~ (1984)
  8.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가야 정치체의 중심과 주변", 2022 가야사 기획 학술심포지엄 (2022)
  9.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加耶, 가야 역사·문화 연구 총서 Ⅱ -시대사-" (2022)
  10. 羅州 松堤里 古墳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 (2022)
  11. 김낙중, "석실로 본 나주 복암리 세력과주변 지역의 동향",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49(1), pp.44~67 (2016), 국립문화유산연구원
  12. 김민주, "신라고분 출토 청동용기 연구", 고고광장, (17), pp.55~90 (2015), 부산고고학회
  13. 金元龍, "高靈壁畫古墳調査報告", 考古人類學科, 2 (1967), 서울大學校 文理大學 考古人類學科
  14. 김준식, "가야 세장방형 횡혈식석실의 출현배경과 발전양상", 한국고고학보, (102), pp.92~125 (2017), 한국고고학회
  15. 김준식, "고령 고아동벽화고분의 성격과 대가야 지배층", 한국상고사학보, 101(101), pp.125~158 (2018), 한국상고사학회[DOI]
  16. 김준식, "加耶 橫穴式石室 硏究", 박사, 고고인류학과, pp.2019
  17. 김준식, "가야고분 출토 청동완의 분포와 의미", 한국고대사탐구, (33), pp.111~144 (2019),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18. 김준식, "고고자료로 본 6세기 가야의 위기와 대응", 위기와 대응: 고고자료의 해석, 제64회 전국역사학대회 고고학부 발표 (2021), 한국고고학회
  19. 盧重國, "大加耶의 成長과 發展" (2004), 高靈郡·韓國古代史學會
  20. 文化財管理局, "武寧王陵 發掘調査報告書" (1974), 三和出版社
  21. 박천수, "호남 동부지역을 둘러싼 大伽耶와 百濟 – 任那四縣과 己汶, 帶沙를 중심으로 –", 한국상고사학보, 65(65), pp.107~130 (2009), 한국상고사학회
  22. 박천수, "가야문명사" (2018), 진인진
  23. 성정용, "횡혈식석실분의 수용과 고구려 사회의 변화" (2009), 동북아역사재단
  24. 李南奭, "百濟 橫穴式石室墳의 構造形式 硏究", 百濟文化, 22 (1992),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25. 李盛周, "백제의 문물교류" (2007),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6. 이한상, "大加耶의 성장과 龍鳳紋大刀文化", 신라사학보, (18), pp.319~353 (2010), 신라사학회
  27. 이한상, "고령 지산동 대가야고분군" (2015), 대가야박물관
  28. 李熙濬, "加耶史 硏究-대가야의 政治와 文化-" (1995), 경상북도
  29. 이희준, "신라고고학연구" (2007), 사회평론
  30. 이희준, "고령 지산동 대가야고분군" (2015), 대가야박물관
  31. 이희준, "대가야고고학연구" (2017), 사회평론
  32. 林連珠, "晋州地域 三國時代 古墳文化 硏究", 석사, 사학과, pp.2021
  33. 전호태, "伽倻의 불교와 古墳壁畵" (2005), 울산대학교 출판부
  34. 曺永鉉, "三國時代 橫穴式 石室의 系譜와 編年 硏究 : 漢江 以南 地域을 中心으로", 석사, 사학, pp.1990
  35. 주보돈, "고령 지산동 대가야고분군" (2015), 대가야박물관
  36. 河承哲, "慶南의 加耶古墳과 東亞細亞" (2010),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37. 홍보식, "한반도 남부지역의 왜계 요소-기원후 3∼6세기대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44), pp.21~58 (2006), 한국고대사학회
  38. 홍보식, "문물로 본 가야와 백제의 교섭과 교역", 호서고고학, (18), pp.116~147 (2008), 호서고고학회
  39. 吉井秀夫, "朝鮮半島錦江下流域の三國時代墓", 史林, 七十四(一) (1991), 史學硏究會(京都大學文學部)
  40. 吉井秀夫, "熊津·사비時代 百濟 橫穴式石室墳의 基礎硏究", 석사, 고고인류학, pp.1993
  41. 吉井秀夫, "百濟の木棺-橫穴式石室出土例を中心として-", 立命館文學, 542 (1995), 立命館大學
  42. 山本孝文, "百濟 泗沘期 石室墳과 政治·社會相 硏究", 석사, 고고학과, pp.2001
  43. 山本孝文, "三國時代 律令의 考古學的 硏究" (2006), 서경문화사
  44. 山本孝文, "百濟 泗비期 石室의 設計와 構造系統論", 한국고고학보, (63), pp.112~149 (2007), 한국고고학회
  45. 定森秀夫, "韓國慶尙南道晋州 水精峰2號墳·玉峰7號墳 出土遺物", 加耶通信, 19·20 (1990)
  46. 朝鮮總督府, "朝鮮古蹟圖譜 3" (1916)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5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