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일제의 한국 강점 논리와 그 선전

Logic of the Japanese Forcible Occupation of Korea and its Propaganda

0

조회

0

다운로드

1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쟁탈 및 지배를 ‘문명화’로 합리화했다.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벌이는 일을 원주민의 ‘문명화’를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 하는 것이다. 토착 사회·문화는 일방적으로 ‘야만’으로 규정되었으며, ‘문명국’의 침략 및 지배는 ‘만국공법’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근대문명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급속하게 부국강병을 이루어나간 일본은 점차 자신을 ‘문명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조선을 야만시 하는 언설들을 유포하면서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문명화’, ‘문명지도’를 내세운 침략은 특히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1905년 이후 초대 통감으로 온 伊藤博文은 자신의 부임은 조선의 문명화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른 바 施政改善 사업을 펼쳐나갔다. 당시 조선사회가 줄기찬 개혁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왕조 말기의 비효율성, 정치적 부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사업들은 인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일제는 신문, 내시시찰, 연설회 등의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통감부의 시정을 ‘문명화’ 사업으로서 선전하였다. 이러한 선전은 서구 열강의 일제의 조선 지배 인정을 이끌어내고, 조선인들의 반일항쟁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특히 ‘문명개화’를 지상의 목표로 해왔던 개화파의 묵인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시정개선의 본질이 일본세력의 ‘진출’을 돕고, 대부분 조선인들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었다.

Abstract

Western imperialist countries rationalized their struggle for colonization and colonial rule as a way to civilize the colonies, that is, they rationalized what they did for their own countries was for civilization of the natives. Indigenous society and culture were designated one-sidedly as barbarism and the aggression and rule of the civilized countries was justified by the public law of all nations. Japan which accepted Western modern civilization to the utmost and rapidly achieved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after Meiji Revitalizing Reform gradually put herself on the ranks of the civilized countries and uttered that Joseon was an uncivilized country, and started to show her ambition to invade Joseon. Japan’s invasion led by civilization and a way to civilization showed itself on a full-scale particularly after the Russo-Japanese War. Ito Hirobumi who came to Joseon as the first Resident-General after 1905 said that his appointment was to civilize Joseon and carried out, what is called, the projects for civic betterment. At that time Josoen could not overcome ineffectiveness around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and political corruption in spite of its incessant reform drive. In such a situation the projects to improve administrative efficiency was a good thing to win the hearts of the people. Japanese imperialism propagated the administration of the Residency-General in Joseon by all means including the paper, informal announcement, campaign speeches, and others as the project for civilization. This propaganda would contribute to drawing Western recognition of Japanese control of Joseon and weakening of anti-Japanese struggle of Koreans. Particularly it would draw the tacit consent from the "Enlightenment" group which targeted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But as the essence of civic betterment was to help the advancement of the power of Japan into Joseon and was against Korean interests, its effectiveness was limited.

참고문헌 (35)

  1. "第二次施政年報", ~
  2. "朝鮮總督府施政年報(明治43年)" (1912), 朝鮮總督府
  3. "『資料 雜誌にみる近代日本の朝鮮認識』 2" (1999), 綠蔭書房
  4. 강창석, "조선통감부 연구" (1995), 국학자료원
  5. 구선희,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대조선문화정략", 국사관논총, 8 (1989)
  6. 권윤경, "18세기 후반 계몽사상과 식민주의-레날의 『두 인도의 역사』를 중심으로-", 서양사연구, 29 (2002)
  7. 권태억, "1904~1910년 일제의 한국침략 구상과 ‘시정개선’", 韓國史論, 31 (1994)
  8. 권태억, "통감부 설치기 일제의 조선 근대화론", 국사관논총, 53 (1994)
  9. 金正明, "日韓外交資料集成 第6卷 上" (1964), 巖南堂書店刊
  10. 金圭煥, "日帝의 對韓 言論․宣傳 政策" (1978), 二友출판사
  11. 김용구, "『만국공법』(小花) 한국개념사총서 1", ~ (2008)
  12. 金載昊,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재정제도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박사, pp.1997
  13. 南基正, "일제의 한국 사법부 침략 실화" (1978), 육법사
  14. 大谷正,"中國および朝鮮における日本外務省の"新聞操, "中國および朝鮮における日本外務省の「新聞操縱」(1)-1894~1913년-", 専修法学論集, 55 (1992), 専修大学法学会
  15. 문준영,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 사법정책과 그 귀결 in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 (2009), 선인
  16. 朴羊信, "19세기 말 일본인의 조선여행기에 나타난 조선상", 역사학보, 177, pp.105~130 (2003), 역사학회
  17. 박찬승, "1890년대 후반 渡日(도일) 유학생의 현실인식-유학생친목회를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31 (1999)
  18. 백영서, "동아시아 근대이행의 세 갈래" (2009), 창비
  19. 山內進,"明治國家における"文, "明治國家における「文明」と國際法", 一橋論叢, 115(1) (1996)
  20. 森山茂德, "명치기(明治期) 일본 지도자들의 한국인식 in 한일공동연구총서 2 근대교류사와 상호인식 1" (2001),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1. 송병기, "개화기 일본유학생 파견과 실태(1881~1903)", 동양학, 18 (1988)
  22. 松本三之介, "國民的使命觀の歷史的變遷 in 近代日本思想史講座8 世界の中の日本" (1961), 筑摩書房
  23. 須田努, "江戶時代 民衆の朝鮮․朝鮮人觀", 思想, (1029) (2010)
  24. 市川まりえ, "1905~1910년 在韓日本人 民間言論의 統監府政治觀", 한국사론, (55) (2009)
  25. 안병직, "계몽사상과 유럽의 이념", 서양사연구, 27 (2001)
  26. "『伊藤博文傳』, 편찬주간 小松綠", ~
  27. 이성환,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 (2009), 선인
  28. 李潤相, "일제에 의한 식민지 재정의 형성과정-1894~1910년의 세입구조와 징세기구를 중심으로-", 한국사론, 14 (1986)
  29. 이해창, "개정증보판 한국신문사연구" (1983), 성문각
  30. 정연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서양인의 한국관-상대적 정체성론·정치사회 부패론·타율적 개혁불가피론-", 역사와 현실, (34) (1999)
  31. 조현범, "문명과 야만-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 (2002),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2. "통감부문서" (1998), 국사편찬위원회
  33. 표영수, "대한제국 말기 재일유학생의 애국계몽사상", 숭실사학 (1998)
  34. 함동주, "메이지 일본의 조선론:문명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 2 (1994)
  35. 함동주, "러일전쟁 후 일본의 한국식민론과 식민주의적 문명론", 동양사학연구, 94(94), pp.177~203 (2006), 동양사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