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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정치적 추이와 김저 사건

Developments in the political situation in the Late Koryŏ Dynasty and the Incident of Kim Jeo(金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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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조선 건국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무시된 사실들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려말의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인물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다. ‘김저 사건’은 이성계 일파가 권력을 본격적으로 장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15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우왕과 그 뒤를 이어 2년 동안 왕을 하고 있던 창왕이 신돈의 아들과 손자로 몰려 죽임을 당하였다. 아울러 사건 주모자로 몰린 김저는 물론이고 당대 외적의 침입에서 많은 공을 세웠던 변안열 등 여러 인물들이 재판도 받지 못하고 억울한 죽임을 당하였다. 이 글은 그런 ‘김저 사건’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을 하였다. 그 결과 ‘김저 사건’은 여러 이유로 이성계 일파에 의하여 조작된 사건으로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첫째 사건 관련 1차 사료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기록의 사건 발생일 관련 날짜 분석 결과 여러 모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 관련 날짜의 모순은 이성계 세력이 억지로 미리 짜놓은 틀에 맞춰 기재하려고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둘째, 드러난 자료 분석을 통해서 볼 때 우왕이 이성계를 해치도록 부탁한 곽충보는 이성계를 암살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곽충보는 오히려 이성계가 오랫동안 자신의 휘하에 있었다고 하는 등 이성계 세력의 일원이었다. 셋째, 사건 관련자 숙청을 처음 우왕의 인척부터 시작해 정지 등 무인, 그리고 이색, 이숭인 등 ‘신진사류’까지 확대해가면서 3단계에 걸쳐 진행하였지만, 그들 숙청자가 김저 사건에 공모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 바도 없이 숙청하였기 때문이다. ‘김저 사건’ 내용과 그 이후 관련자 숙청 과정 분석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성계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 장악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인물들은 무장과 ‘신진사류’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무리한 숙청을 감행하였지만, 반대하는 세력이 여전히 많아서 이성계 세력은 이후 ‘윤이․이초 사건’, 정몽주 살해 등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만을 가지고 조선 건국 자체에 대한 평가를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과 그런 사건을 자행한 조선 건국 세력에 대한 평가는 일정 부분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는 길이라고 판단된다.

Abstract

Historical significance of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is stressed very much, and due to that reason, many other facts were neglected in the process. A typical example is the true evaluation of innocently sacrificed figures in the late Goryeo Dynasty due to fierce power struggle. ‘The Incident of Kim Jeo’ was an event that greatly helped the Yi Seong-gye(李成桂)’s party gain power in earnest. Due to this incident, King U, who was in the throne for 15 years, and King Chang, who was in the throne for 2 years succeeding King U, were accused of being each son and grandson of Shin Don and therefore killed. Moreover, not only Kim Jeo, who was blamed for being mastermind behind the incident, but also Byeon An-yeol(邊安烈) and others, who distinguished themselves in the foreign invasion during that period, were all killed under a false accusation without even being brought to trial. This Study made a microscopic analysis on such ‘The Incident of Kim Jeo’. As a result, it is judged that Yi Seong-gye’s party fabricated ‘The Incident of Kim Jeo’ for several reasons. First of all, there is inconsistency regarding the date of occurrence of the incident in 『Goryeosa 高麗史』 and 『Goryeosajeoryo 高麗史節要』, which are primary historical sources in relation to the first incident. Secondly, it is unlikely under historical facts that King U asked Gwak Chung-bo(郭忠輔) to kill Yi Seong-gye. Thirdly, there was no clear evidence about punishing the people involved in the incident. After ‘The Incident of Kim Jeo’, as to their intent, Yi Seong-gye’s party grasped power by purging the opposition forces. And not long after, the Joseon Dynasty was founded.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cannot be evaluated with only this incident. However, I believe that revaluation of the wrongful deaths and the ones blamed for it is necessary. I believe this is the right path of studying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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