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時代 鄭夢周 祭享書院의 建立 推移와 性格
Progress of Building Sacrificial Rite Seowon(書院) for Jeong Mong-ju(鄭夢周) and Their Characteristics in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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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시대 정몽주를 제향하는 서원은 총 13개소였다. 그 분포를 살피면, 지역적으로 경상도에 6개소가 건립되어 있었고, 건립 시기는 선조~현종년간에 9개소로 집중되어 있다. 서원의 배향인물은 정몽주의 도학 계보상의 위상을 반영하여 문묘종사유현을 중심으로 追享이 이루어졌다. 사림계의 등장이후 정몽주를 추숭하기 위한 활동은 문묘종사운동을 시작으로 경향에 걸친 서원의 건립으로 확산하였다. 이후 中央 朋黨의 분립과 궤를 같이하여 서원의 정치적 기능은 강화되어 갔다. 경기도에 위치한 忠烈書院의 예에 나타나듯 西人과 南人은 정몽주를 제향하는 서원을 적극적으로 견인하여 자파의 정치적 기반을 확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원을 중심으로 숙종년간 정치적인 알력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老論계의 우위가 지속되던 상황에서 영남지역에 위치한 烏川書院과 鷗江書院의 정치적 성향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다. 18세기에 들어와 老論 洛論學風의 정립과정에서 경기지역 서원들은 李縡 등 洛論宗師들의 강학처로 기능했던 모습도 정몽주 제향서원의 변화상을 살피는데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Abstract
Seowon(鄭夢周 書院) that held a sacrificial rite for Jeong Mong-ju(鄭夢周) were 13 in total. 6 places were located in Kyongsang Province locally and 9 places were built from Seonjo(宣祖) to Hyeonjong(顯宗) years. Jehyangin of Seowon was primarily for Jeong Mong-ju(鄭夢周) but additionally for others who were listed in the Munmyo(文廟) with Jeong Mong-ju. Since the entrance on the Sarim(士林), Seowon that held sacrificial rites for Jeong Mong-ju(鄭夢周) had increased. Their political function was also strengthened and caused friction against central power. Also, as shown in Chungyeol-seowon(忠烈書院)’s Ganghak(講學) activity in Gyeonggi-do(京畿道) after 18th century, the connection with Noron Naknonhakpung(老論 洛論學風) can be ob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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