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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통해 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그 제향서원(祭享書院)

A Study on Po-Eun Jeong Mong-Ju(鄭夢周) and Seowons Holding Religious Service for Him based on Jour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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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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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를 제향한 서원은 숭모의 공간, 학술의 공간, 공의의 공간이란 문화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 글에선 일기자료를 통해 조선 지식인들이 정몽주와 그를 제향한 서원에 대하여 가졌던 인식을 확인하였다. 고려왕조에 충절을 다한 정몽주는 조선의 지식인에게 절의의 상징이자 동방 이학(理學)의 조(祖)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정몽주의 유적지와 제향서원(祭享書院)에 방문하여 그를 숭모하였다. 또한 정몽주를 제향한 서원은 지역 사회에서 학술과 공의의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숭모의 공간으로 인식된 장소는 정몽주의 고향, 조양각(朝陽閣)과 흥국사(興國寺), 선죽교(善竹橋), 구강서원(鷗江書院), 반구서원(盤龜書院), 숭양서원(崧陽書院), 운전서원(雲田書院), 임고서원(臨皐書院)이었다. 일기자료를 확인한 결과 정몽주를 제향한 서원은 학술의 공간으로도 기능하였다. 숭양서원은 지방관의 자녀가 독서하는 학술적 공간이었다. 도남서원(道南書院)은 강회(講會)를 시행하고, 지역의 지리지인 『상산지(商山誌)』 속지(續誌)를 편찬하였다. 삼강서원(三江書院)은 주기적으로 백일장을 시행하였다. 구강서원은 『퇴계집(退溪集)』을 간행하여 지역의 도서관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공의의 공간으로 기능한 곳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원과 관련한 지역간 논의, 지역의 대표 기구로서의 역할 담당, 정몽주를 제향한 서원간의 논의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지방관의 공적 지원을 받았던 구강서원과 반구서원도 있었다. 일상사의 기록인 일기를 통해서도 정몽주를 제향한 서원은 조선의 지식인에게 숭모, 학술, 공의의 공간으로 기능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Seowons holding religious service for Jeong Mong-ju hold their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culture as spaces of worship, scholarship, and joint discussion.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perceptions of Jeong Mong-ju and Seowons holding religious service for him among the intellectuals of Joseon based on journal materials. Jeong Mong-ju, who exhibited his utter loyalty to the Goryeo Dynasty to the end, was regarded as a symbol of integrity and progenitor of Oriental natural sciences by the intellectuals of Joseon, who made a visit to Jeong Mong-ju relics and Seowons holding religious service for him to worship him. Seowons holding religious service for him also functioned as the spaces of scholarship and joint discussion in the community. The places considered as spaces to worship him include his hometown, Joyanggak, Heungguk Buddhist Temple, Seonjuk Bridge, Gugang Seowon, Bangu Seowon, Sungyang Seowon, Woonjeon Seowon, and Imgo Seowon. The journal materials show that Seowons holding religious service for him also functioned as spaces of scholarship. Sungyang Seowon was an academic place where the children of local government officials read books. Donam Seowon held Ganghoi and published the Sokji of Sangsanji, a local book of geography. Samgang Seowon held an essay contest periodically. Gugang Seowon published Toigyejip, functioning as a local library. Some of them also functioned as a space of joint discussion. They would have discussions between different areas related to a Seowon, represent the community, and develop discussions with other Seowons holding religious service for Jeong Mong-ju. Finally, Gugang Seowon and Bangu Seowon received official supports from local government officials. The journals as the records of daily life show that Seowons holding religious service for Jeong Mong-ju also functioned as spaces of worship, scholarship, and joint discussion among the intellectuals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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