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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erial Cult in Augustan Athens: Questions and Paradox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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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악티움 해전 이후 아테나이에 황제숭배가 도입되었으며, 그 과정에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아테나이와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관계,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와의 관계가 그것이다. 공화정 말 내전 시, 아테나이는 충심으로 안토니우스를 지지하여, 그와 그의 아내 옥타비아, 그리고 클레오파트라를 신처럼 예우하기까지 했다. 악티움 해전 이후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를 지지한 아테나이 시를 용서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가 충분히 ‘관용’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아테나이 측의 정서도 특별히 화해에 적극적이었다는 증거가 없다. 황제의 신성에 관해서, 아우구스투스의 정책은 안토니우스와 정반대였다. 안토니우스가 아테나 여신과 신성혼례를 치르고, 옥타비아 혹은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신격화된 것과 달리,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을 로마 여신과 함께 숭배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숭배를 위한 신전,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신적 예우, 그리고 아테나이에서 아우구스투스 숭배에 관해 문헌 사료는 완전히 침묵하고 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위에 있던 로마 여신과 아우구스투스를 함께 모신 신전은 아테나이 시의 가장 중요한 곳에 위치하면서도 문헌에서 전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셈인데, 이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사실이다. 아우구스투스 숭배에 관한 고고학 및 금석문 상의 증거는 아마도, 그 숭배를 대하는 아테나이 측의 태도가 열의보다는 의무감이었음을 시사한다고 짐작된다. 아테나이가 황제숭배를 충심으로 받아들인 것은 클라우디우스 황제 치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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