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가 이야기하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
Catherine de Medicis vue par Balz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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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프랑스, 1559년… 발루아(Valois) 왕가의 앙리(Henri) 2세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프랑스와(François) 2세는 재위 18개월만에 사망하고, 동생인 샤를르(Charles) 9세가 열 살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다. 이후 16세기 후반기에 섭정(Régence)을 펼치게 되는, 모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edicis)는 프랑스 역사의 가장 매혹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역사가와 작가들은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이중 인격의 소유자였다고 평가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위대한 왕(Grand roi)으로서의 탁월한 정치적 능력으로 프랑스 왕국을 이끌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교활한 수단들을 많이 이용한 '철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앙리 2세 말기부터 전파되기 시작한 칼빈주의(Calvinisme)는 많은 귀족들의 개종을 이끌었고, 따라서 '한 국가내의 두 종교'라는 양상은 왕국의 통일성(Cujus regio, ejus religio, 하나의 국왕, 하나의 국가)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구교(Catholiques)파는 주로 기즈(Guise) 가문의 지휘 하에, 신교도들인 위그노(Huguenots)파는 부르봉(Bourbon) 가문과 꼴리니(Coligny) 제독의 지휘 하에 대립하게 된다. 이렇게 유럽 각국에서는 구교파와 신교파의 충돌이 심각하게 벌어지면서, 두 당파 간에 학살을 일삼게 된다. 그 두 교파들이 한밤중에 서로 습격하여 학살하고, 다시 보복을 자행하는, 그런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 결과, 하나의 신을 부르짖으면서도,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상대 교파를 도륙하는 종교전쟁이 가열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16세기, 소위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신교 중에서도 칼뱅(Calvin)파 교도들로 이루어진 '위그노'와 카톨릭 교도들이 서로 난폭한 학살을 자행했으며, 1562년에는 카톨릭 군대가 신교도들을 습격하면서 위그노 전쟁이 발발한다. 특히, 1572년 8월 23일의 '생 바르텔르미(Saint-Barthélemy) 대학살'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 발단은, 위그노파 지도자인 꼴리니 제독을 제거하려는 암살 계획이 실패하면서, 정치적 음모에 의해 위그노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벌어진 것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발자크가 쓴 소설 속에서 카트린 드 메시스가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는지, 그리고 생 바르텔르미 대학살을 유발한 그 모후의 책임 문제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발자크가 묘사하는 바,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중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녀는 섭정 왕후로서 권위와 탁월한 정치적 재능을 발휘한 프랑스 왕국의 지도자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배반을 일삼은 교활한 여인이었다. 정치가로서, 그 모후는 그녀 자신과 가문의 권력과 명성을 지키기 위해 양면 정책(Politique à deux visages)을 구사했다. 즉, 정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일단 그들을 끌어들인 다음 서로 싸우게 만드는 정치적 수법이었다.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카톨릭을 편들면서, 자비를 구하는 신교도들을 냉혹하게 처형했다. 그것은 결국 생 바르텔르미 대학살 사건으로 귀결되고 만다. 따라서 그 대학살의 동기와 조직에 관해서 말하자면, 발자크의 견해로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책임은 명백하다. 그녀는 대학살의 주범이었다.
참고문헌 (7)
- "Albin Michel" (1957)
- "Editions de Fallois" (1994)
- "Perrin" (1997)
- "Fayard" (1994)
- "Fayard" (1959)
- "Pygmalion" (1973)
- "Charles I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