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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 어문 운동이 문학에 미친 영향

A linguistic movement and literary men's response in the Liberatio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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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민족 국가 수립이라는 해방기의 역사적 과제 앞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민족어로서의 모국어 회복 운동’은 좌우익의 정치 이념적 대립을 떠나 찬반 이론의 여지가 있기 어려운 것이었다. 모국어 상실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일제 강점기 경험은 민족의 운명과 언어의 운명을 동일시하게 한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훼손된 모국어의 회복을 통해 민족 정신을 보존할 수 있고 민족 국가의 기반을 확립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일본어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어로서의 순수한 모습을 되찾기 위해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모국어 회복 운동’은 정부 차원의 어문 정책에 그대로 반영됨으로써 우리말과 글이 국어로서의 지위와 위상을 부여받고 본격적으로 규범화, 제도화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8월 20일 <조선어학회>는 새로운 국어 회복을 위한 당면 방침을 정하고, 8월 25일 열린 임시 총회에서 간사 6명을 선정함으로써 재건되었다. 그 구체적인 활동 방향은 국어 교원 양성, 국어 교과서 편찬, ≪한글≫誌의 속간, 국어 사전 편찬 등이었다. 민족어로서의 모국어 회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시기 어문 운동은 비단 어학자만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기 문인들에게 또한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으로 다가왔다. 한 좌담회(봉황각)에서 과거 일제 시대 모국어를 버리고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한 사람들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은 이태준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족어로서의 모국어 회복 문제는 당시의 지식인 대부분이 별다른 이견 없이 동의했던 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는데, 본 논문은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 시기 어문 운동에 대한 문인들의 반응과 문제 의식을 우선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Abstract

A linguistic movement and literary men's response in the Liberatio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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