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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말 7세기 초 고구려와 말갈의 관계-『수서』「말갈전」을 중심으로-

The Relation between Gogureo and Malgal from Late 6C to Early 7C-Focused on “Malgaljeon” in Sui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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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수서』「말갈전」에는 말갈이 속말부, 백산부 등 7개의 부로 나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 『북사』나 『구당서』, 『신당서』 등에도 있다. 말갈의 거주 지역을 기존에는 백산부의 백산이 백두산이라고 하면서 다른 부의 상대적 위치를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말갈은 고구려의 영역내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 되므로 여러 가지 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고구려와 속말부의 경계선인 도태산(태백산)과 백산부의 거주지인 백산은 대독정자산이다. 그리고 속말부는 지금의 농안 서북쪽에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다른 5부의 위치도 재검토 하여야 한다. 중국 정사에 기록되어 있는 말갈인들은 고구려의 북쪽에 거주하고 있던 숙신계 주민이다. 고구려와 숙신족(말갈)은 태조왕대부터 접촉을 하였으며, 서천왕대에는 이들 중 일부를 복속시켰다. 6세기 말에 이르러서도 고구려에는 북쪽에 거주하고 있던 말갈인들 중 일부를 복속시키고 군사의 일부로 활용하였다.

Abstract

It was written in “Malgaljeon” in Shishu including Buksa, Jiu Tang shu, and Xin Tangshu that Malgal was classified into 7 tribes: Sokmalbu, Baeksanbu, and so on. Until now, historians have considered Baeksan, one of the residence of Malgal, as Baekdusan, and explained locations of other tribes through it as the standard. If so, it needs to reconsider this, because this means that Malgal lived in the territory of Gogureo. Dotaesan(Taebaeksan), the border between Gogureo and Sokmalbu, and Baeksan were the Daedokjungjasan. And Sokmalbu was located in the northwest of contemporary Nongan. So we should reconsider locations of others on the basis of this. Malgal written in Chinese Authentic Historic Records consisted of the Sukshin lineage that resided in the north of Gogureo. In the King Taejo of Gogureo, Gogureo and Malgal came into first contact, and the King Seochun conquered some parts of them. In late 6C Gogureo kept conquering them and used some of them as sold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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