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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에서의 말갈’ 연구의 현황과 과제

The Current State of Research on the Mohe in Koguryo History and Remaining Challe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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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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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에서의 말갈 연구는 주로 말갈의 계보, 말갈 7부의 위치, 고구려의지배 정도와 방식 등에 집중되었다. 중국정사(中國正史)에서는 숙신-읍루-물길-말갈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이런 일원적 계통론은 1980년대 이전까지 중국학계의 보편적인 관점이었고, 지금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는 견해들도 꾸준히 나왔다. 요즘은 이 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고구려와 말갈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당대의 말갈 7부 중일부 또는 다수의 부가 고구려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부가 고구려 지배를 받았는지, 고구려 안에서 말갈은 어떤 존재였는지는 많이 연구되지않았다. 최근 말갈 유적 조사가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말갈의 실체는 여전히 논란이되고 있다.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 역사를 봄으로써 정확한 사실규명과 이해를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말갈집단에게 일어난 변화를 동태적으로 살피지 않고 각 시기별로 정체적, 단절적, 기계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사실을 잘못 파악하기도 한다. 말갈은 역사의 흐름과 변화 속에서 다양한 집‘고구려사에서의 말갈’ 연구의 현황과 과제 | 129 단이 이합집산하면서 형성되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다. 4세기 이후 고구려 영역 안에는 다양한 종족집단이 거주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영역을 확대하면서 차지한 지역에 사민(徙民)을 하거나 자신들의 문화를 강제이식하지 않았다. 따라서 고구려 영역에 포함된 지역에서 고구려 중심부의 특징적인 유적·유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말갈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을 인식한 가운데 고고학 자료와 문헌사료를 보아야 정확한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 말갈과 고구려를바라보는 객관적 인식이 필요하다.

Abstract

Research on the Mohe (Malgal) in Koguryo history has focused on their lineage, the location(s) of their seven tribes, and to what degree and how Koguryo controlled them. According to official Chinese history, the order of descent proceeds from Sushen (Suksin) to Yilou (Eumnu) to Wuji (Mulgil), and then to Mohe. This unitary lineage is still generally acknowledged in Chinese academia. However, opinions against such a lineage have continuously been suggested, as well. Regarding the Mohe’s relations with Koguryo, some or a majority of the Mohe’s seven tribes are considered to have been under Koguryo’s control during the Sui-Tang period. Yet, the specific method and range of such control has not been studied sufficiently. The Mohe formed as bands of people dispersed and regrouped throughout the course of history. This was no different from Koguryo. Since the fourth century, a diversity of tribes ‘고구려사에서의 말갈’ 연구의 현황과 과제 | 131 resided within Koguryo territory. And as Koguryo expanded it did not attempt to forcibly relocate the indigenous people in areas it had taken over nor did it culturally convert them. These factors must be taken into consideration when studying archaeological or written sources in order to draw closer to accurate facts. Looking into the past from viewpoints of the present makes it difficult to accurately ascertain or understand the facts, which is why the Mohe and Koguryo need to be perceived more obje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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