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淸初 정책 결정기구 속의 滿洲人

Manchu Bannermen in the Central Governmentof the Early Qing Empire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여러 측면에서 淸 역사상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되는 崇德年間(1636~1643)부터 順治年間(1644~1661)까지 內三院, 6部, 理藩院, 都察院의 滿洲人 책임자를 분석하였다. 입관 전 홍타이지(Hongtaiji, 皇太極)는 군주로서의 권한을 확보하면서 커져가는 국가의 규모에 걸 맞는 행정조직을 마련해갔다. 그의 통치시기에 내삼원의 대학사들은 비트허시(Bithesi, 筆帖式) 출신들이며, 황실과 조정 내에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반면, 6부나 이번원, 도찰원의 承政들 중에는 ‘皇族’이나 ‘功臣’과 관련된 인물들이 다수 임명되었다. 입관을 한 후 도르곤(Dorgon, 多爾袞)이 섭정을 하는 시기에, 내삼원 대학사들은 숭덕연간과 비교를 할 때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시기에 6부 상서로 임명된 이들 중에는 숭덕연간 후반에 6부의 책임자였던 이들이 그대로 順治 3~4년까지 그 업무와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치제가 친정한 이후의 상황을 보면, 숭덕연간이나 도르곤 섭정기 6부 상서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황족’, ‘공신’ 키워드는 여전히 유효했다. 오히려 그동안 ‘황족’들과는 거리가 있었던 내삼원에 覺羅들이 임명되었고, 6부 상서들 중에도 ‘황족’들이 7명이나 되었다. 五大臣 家系의 인물들도 입관 전이나 도르곤 섭정기와 마찬가지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황실’이나 ‘공신’에 연관된 이들 외에도 世職이나 世爵을 바탕으로 정책결정기구로 진출한 이들이 있다. 이들도 일정 정도의 지위는 갖은 家系였으나, ‘황실’이나 五大臣 반열의 ‘공신’들과는 구별되는 존재들이었다. 또한 세직이나 세작을 계승하지 않은 이들도 있으나, 그들이 이들 기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explain Manchu Bannermen’ appointed pattern in the central government of the early Qing empire. Especially, this article focus on organization of manchu officers of the main institutions under Hongtaiji and the Shunzhi Emperor. As you know, during Hongtaiji’s early reign, the Deliberative Council of Princes and Ministers(議政王大臣) was an advisory body for the monarch. But, Hongtaiji gradually set up the Inner Three Courts(內三院), the Six Ministries(6部), the Censorate(都察院) and the Lifan Yuan(理藩院), he had strengthen the powers of the monarch. The Inner Three Courts and the Six Ministries were main policy-making body during the early Qing period. It is important to analyze that emperors appointed someone. These organizations were responsible for deciding major policies of the Imperial government. The number of officials comprising organizations varied from time to time, they staffed mainly by members of the Imperial clan or descendants of Founding contributor. These flow continued even the Shunzhi Emperor started to rule personally. In the central government of the early Qing empire, becoming the officials of these organizations, important factors were the Imperial kinship and distinguished military services. How these flow change in the Kangxi period? I will continue to research on this topic.

참고문헌 (38)

  1. 崑岡, "欽定大淸會典" (1976), 新文豊出版公司
  2. 崑岡, "欽定大淸會典事例" (1999), 上海古籍出版社
  3. 滿文老檔硏究會, "滿文老檔" (1955), 東洋文庫
  4. 潘喆, "淸入關前史料選輯 2" (1984), 中國人民大學出版社
  5. 鄂爾泰, "八旗通志(初集)" (1986), 東北師範大學出版社
  6. 任國緒, "滿漢名臣傳 1" (1991), 黑龍江人民出版社
  7. 錢實寶, "淸代職官年表" (1980), 中華書局
  8. 趙爾巽, "淸史稿" (1977), 中華書局
  9. 中國第一歷史檔案館, "淸初內國史院滿文檔案歷編" (1985), 光明日報出版社
  10. 弘晝, "八旗滿洲氏族通譜" (2002), 遼海出版社
  11. "淸世祖實錄, In 淸太宗實錄" (1993), 中華書局
  12. Arthur Hummel, "Eminent Chinese of the Ch'ing Period, vol.1" (1944),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3. 古鴻廷, "淸代官制硏究" (1999), 五南圖書出版公司
  14. 郭松義, "淸朝典制" (1993), 吉林文史出版社
  15. 陶希聖, "明淸政治制度" (1967), 臺灣商務印書館
  16. 雷炳炎, "淸代八旗世爵世職硏究" (2006), 中南大學出版社
  17. 김선민, "만주족의 청제국" (2009), 푸른역사
  18. 白新良, "淸代中樞決策硏究" (2002), 遼寧人民出版社
  19. 楊樹, "淸代中央政治制度" (1978), 臺灣商務印書館
  20. 姚念慈, "淸初政治史探微" (2008), 遼寧民族出版社
  21. 楢木野宣, "淸代重要職官の硏究" (1975), 風間書局
  22. 劉小萌, "滿族從部落到國家的發展" (2001), 遼寧民族出版社
  23. 이블린 S. 로스키, "청 황실의 사회사" (2010), 까치
  24. 張普, "淸朝法制史" (1994), 法律出版社
  25. 張晉, "清入關前國家法律制度史" (1988), 遼寧人民出版社
  26. 邸永君, "淸代翰林院制度" (2002),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7. 趙志强, "淸代中央決策機制硏究" (2007), 科學出版社
  28. 高翔, "淸朝內閣制度述論" (2005), 淸史論叢
  29. 宮崎市定, "淸朝における國語問題の一面", アジア史硏究, 3 (1975), 同朋舍
  30. 磯部淳史, "淸初入関前の内三院について−その構成員を中心に", 立命館文学, 608 (2008)
  31. 磯部淳史, "淸初における六部の設置とその意義", 立命館東洋史學, 619 (2010)
  32. 杜家驥, "對淸代議政王大臣會議的某些考察", 淸史論叢, 7 (1986)
  33. 杜家驥, "對淸代議政王大臣會議的某些考察", 淸史論叢, 7 (1986)
  34. 神田信夫, "淸初の文館について", 東洋史硏究, 19(3) (1970)
  35. 李鴻彬, "淸初傑出的女政治家-孝莊文皇后", 滿族硏究, 2 (1998)
  36. 張德澤, "淸代國家機關考略" (2001), 學苑出版社
  37. 崔震奎, "淸의 中國支配와 筆帖式-", 중국사연구, (46), pp.225~256 (2007), 중국사학회
  38. 馮元魁, "略論淸朝內閣的職掌與機制", 上海師範大學學報, 2 (1989)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