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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樂堂 金就成의 시에 나타난 志向意識

A Study on the inclination of consciousness of JinRakDang Kim Chuiseong’s which appeared in hi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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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이 논문은 조선 중기에 살다간 진락당(眞樂堂) 김취성(金就成: 1492∼1550)의 시에 나타난 지향의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가 생존하던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무르익어 갈 때였다. 그가 일선학맥(一善學脈)의 가운데 심학(心學)을 계승하였다. 그가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넓었으며, 학문이 깊고, 욕심이 없어 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두루 지녔다. . 그가 남긴 시는 모두 철리적(哲理的)인 것이다. 그가 시에서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하였다. 순수 문학 면에서 보면 그의 시가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그가 남긴 시를 통하여 그가 지향의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락당이라는 당호를 통하여 그가 참 즐거움의 이치를 추구하였다. 그가 추구한 추구한 진락(眞樂)의 의미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 맑은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욕심 없이 맑은 마음을 굳게 지키고자 하였다. 자신의 마음속의 때, 곧 욕심을 버려 맹자가 말하였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추구하였다. 셋째 그가 사사로운 욕심을 막아 천리를 보존하고 자신의 겸손(謙遜)을 통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추구하였다. 넷째 그가 정명(正名)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실천 행동과 학문에 있어서 체용겸비(體用兼備)를 지향하였다. 지금까지 진락당 김취성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 본고를 통하여 그의 삶과 문학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가 무엇을 지향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또 그가 태어나 자란 일선(一善: 善山)의 학풍이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작품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지만, 우리 한문학사에 있어서 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이 점이 한문학사에 있어 그의 위상(位相)이다.

Abstract

This article focused on discussing JinRakDang Kim Chuiseong’s life and the inclination of consciousness which appeared in his poems. He lived on middle era of Choseon Dynasty. He had leaved 6 pieces poems. In his living days the philosophy which based on the principle of human nature was become popular. He had succeeded to the vein of prosecution of studies of Seonsan district. It’s called the principle of practical or popularized ethics. The works which he leaved were the philosophical principles. The consciousness of inclination in his poems was appeared 4 aspects. Firstly, He pursued the principle of real pleasure. The name of his house was the House of real delight. Secondly, through the clean or bright mirror, he protected his mind from avariciousness. Thirdly, with blocking up his own covetousness, he pursued the inseparability of knowledge and practice. Fourthly, he also pursued combine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r a principle and its application which based on justification of his moral duty. He did not leave many piece of poems but he had succeeded to the vein of prosecution of studies of Seonsan district. Further more, he had become popular the principle of controling mind. At this point he should not be disregarded.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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