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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직후 당의 고구려 故地 지배 시도와 유민의 동향

Tang’s Attempt to Rule and Activities of the Refugees after the fall of Gogu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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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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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구려 멸망 직후 당이 고구려 故地를 재편하려는 시도와 이에 대응한 고구려 유민의 동향에 대해 살핀 것이다. 당은 羈縻支配를 고구려 故地에 적용하려고 시도하였다. 기미지배의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기존 지배질서가 인정되어 재지유력자 내지 지방관이 羈縻府州의 장관에 임명되었다. 통치의 대상이 되는 고구려 유민은 ‘百姓’으로 지칭되었는데, 唐代 ‘百姓’의 의미를 참고한다면 당은 고구려 유민을 율령체제 내로 편입시켜 황제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당은 기미부주에 파견된 당 관리, 안동도호부, 遼東道按撫大使를 통해 고구려 故地에 당의 지배질서가 정착되도록 추진하였다. 여타 기미주부에 적용했던 방식과 비교해 볼 때, 안동도호부 병력이 다른 도호부에 비해 많았다는 점과 도호와 안무대사를 동시에 임명하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결국 당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고구려 유민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시도하였으며, 이는 당의 시각에서 고구려 멸망 직후 故地의 정세가 불안정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삼국사기』 地理志에서 鴨淥水 以北 지역의 성을 未降城․已降城․ 逃城․打得城으로 분류하고 城名을 나열한 기록에서 잘 드러난다. 압록수 이북 현황 자료는 고구려 멸망 이후 당이 안동도호부 관할 지역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에서 채록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자료의 작성 시기는 669년 초, 작성 주체는 검교안동도호 설인귀로 추정되며, 未降城은 당군의 공략 목표를, 已降城은 제1목표였던 新城을 공략하기 위한 進軍路와 관련된 성을 기재한 것이었다. 未降城․打得城․逃城의 존재는 고구려 멸망 직후 압록수 이북 지역에서 당의 지배에 편입되지 않은 城이 광범위하게 분포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 자료는 부흥운동이 城 단위로 발생했음을 전하고 있다. 城을 중심으로 한 국가지배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중앙정부의 존재와 별개로 부흥운동이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했다.

Abstract

Tang tried to control Goguryeo’s old territory. It seems that it recognized the existing ruling order, but it was not. Tang recognized the Goguryeo people as 'Baeksong‘. This means that the people of Goguryeo were considered to be under the control of the emperor by incorporating them into the Law Code system. Tang promoted the establishment of a ruling order through Jimifuzhou, Andong Protectorate and Liaodongdo Anmudaesa. Xue Rengui has 20,000 troops in charge of Andong Protectorate. This was more than any other Protectorate. In addition Liaodongdo Anmudaesa Liu rengui tried to prevent the escape of Goguryeo people based on military power. This shows that the situation in Tang was unstable after the collapse of Goguryeo. This situation is illustrated by the record listing the fortresses of the northern part of the Amnok River in the geography section of 『Samguk Sagi』. This data was based on documents prepared by Tang in the process of controlling Andong Protectorate. The main author was Xue Rengui, and ‘The fortresses that hasn't yet surrendered’ recorded the goal of the Tang troop’s attack. ‘The fortresses that had already surrendered’ was described as a route to attack the first target, Sin fortress. What is called ‘The list of fortresses for the north of the Amnok River’ shows that there was a region not ruled by the Tang after the collapse. ‘The fortresses that hasn't yet surrendered’ described the fortress as a direct target of attack. Therefore there would have been more fortress outside Tang's control. It also says that the revival movement centered on fortress. However, the revival movement had limitations that were both individual and decentral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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