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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후 요동 지역의 동향 -안동도호부 및 치청 번진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attribution of Liaodong area after the fall of Gogur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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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은 그 故地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통치하고자 하였다. 요동 지역 또한 그 관할하에 들어갔다. 하지만 안동도호부는 복속된 세력의 자치를 일부 허용하는 기미주로서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하기는 힘든 성격의 기구였다. 안동도호부는 설치 직후부터 고구려 유민의 반발에 직면하였고, 7세기 후반에는 돌궐, 거란의 발흥 등으로 인하여 유지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거기에 8세기 중반 안사의 난 발발로 인하여 상황이 크게 어려워지자 당은 안동도호부를 폐지하며 요동에 통한 지배를 포기한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발해는 요양, 심양 등을 중심으로 한 요동 북부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그리고 요동 남부 지역은 고구려 유민 출신인 이정기 일가가 세운 치청 번진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치청 번진은 요동 남부 지역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면서 발해, 신라를 상대로 한 대외 관계와 무역을 관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9세기 초반 치청 번진의 소멸 이후 요동 지역의 향배에 대해서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우나, 주요 거점 항구를 중심으로 발해가 진출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재지 고구려 유민 집단들이 당 기미주 통치의 관성으로 인해 산발적인 형태로 흩어져 당과 발해 가운데서 생존을 도모하였을 수도 있다.

Abstract

The Tang dynasty destroyed Goguryeo and established Andong protectorate to govern it. Liaodong area also belonged to it. However, Andong protectorate was a tough state that allows autonomy of subordinate forces, and it is a difficult institution to exercise strong power. Andong Protectorate faced the rebellion of the Goguryeo refugees right after the establishment. In the latter half of the seventh century, Andong protectorate suffered a great deal of difficulty due to the rise of the Gokturks and Khitans. In the mid-8th century, when An-shi's rebellion broke out, Tang finally abolished the Andong protectorate and abandoned the Liaodong area. Using this situation, Balhae occupied the northern part of Liaodong centered on Liaoyang and Shenyang. And the Liaodong peninsula is under the control of the Chiqing provincial governor, the Goguryeo refugee, Lee jeong-gi. The Chiqing provincial governor dominated the Liaodong peninsula and oversees foreign relations and trade with Silla and Balhae. Since the fall of the Chiqing provincial governor in the early 9th century, it is hard to guess exactly who controled the liaodong area. However, there is a possibility that Balhae has advanced into the ports and other base areas of the Liaodong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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