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양전과 方位 인식
Senses of Directions in the Chosŏn Society Reflected in the Kwangmu Land Regi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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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충청남도 한산군 4개 마을의 광무양안과 식민지기 토지대장, 지적도를 비교 분석하여 양안에 기록된 양전 방향과 四標의 의미, 역할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조선은 물론 대한제국기에도 양안에는 개별 필지의 위치를 나타내는 별도의 지적도가 부기되지 않았다. 대신 매 필지마다 양전 방향과 사표를 동서남북 네 개 방위로 기록해 두었다. 분석 결과 문자로 기록된 양전 방향이 이웃한 두 개 필지간의 실제 위치관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는 경우가 약 30%에 달했다. 이 경우 사표 역시 비뚤어진 方位를 기준으로 작성되어, 제3자로 하여금 필지의 위치 비정을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4방위만을 활용하며 위치 정보를 텍스트로만 제시했던 것은, 실제 양안의 정보를 사용할 이들 간에는 해당 정보 만으로도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山林天澤 인근에서 남북 축 자체가 재설정되곤 했으나, 이 역시 해당 현장에서 양전 경로를 효율적으로 설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결국, 양전 경로와 사표는 해당 정보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증빙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효과적인 양전 수행을 위한 경로 안내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indigenous sense of directions in the Chosŏn society by comparing directional records in the Kwangmu Land Registers and the colonial cadastral maps. The analysis shows that although Chosŏn had a detailed 24-directional system, only the four-cardinal-points were used for the Kwangmu land survey. The accuracy of cardinal information of the Kwangmu registers was not high, and the axis of north-south was readjusted near the natural terrains. However, this was not just a mistake, but a result of a flexible sense of directions in the society. The realism was the most important, which made records for someone who will be in the same environment with the surveyors. For them, it was no matter whether a third party can find the exact location of each land 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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