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宮中의 出産風俗과 宮中醫學
A Study on Court Childbirth Customs And Court Medicine in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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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시대의 출산 풍속은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宮中醫學에 근거하였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이전의 宮中醫學은 내의원의 御醫들이 학습했던 韓醫學, 특히 조선후기 韓醫學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東醫寶鑑을 기본으로 하였다. 의학적 처방 이외에도, 출산풍속에서는 産母의 무사출산과 신생아의 만복을 빌기 위한 각종 기복행위가 행해졌으며, 신분제 하의 조선에서 산모의 지위, 출생아의 지위 등도 출산풍속에 큰 영향을 끼쳤다.宮中醫學에 기본했던 궁중의 출산풍속은 조선이 유교화되면서 몇 가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그것은 조선초기 왕실의 출산 풍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昭格署와 도교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소격서가 존속하던 기간에는 소격서에서 왕실의 출산풍속을 주관하였으며, 産室에 부적을 붙이고 주문을 외우는 것을 비롯하여 출생아의 만복을 기원하는 풍속이 대부분 太上老君과 같은 도교의 신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출산 후의 捲草祭도 醮祭의 연속이었다.소격서가 임란 후 완전히 폐지되면서 소격서에서 醮祭하는 것이 사라지고, 捲草祭도 도교의 신이 아니라 신생아의 부귀영화와 만수무강을 상징하는 쌀과 돈, 비단 등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産室에 부적을 붙이고, 주문을 외우며, 출산 후에 洗浴, 洗胎를 행하는 것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는 조선이 유교화되면서, 공식적으로 도교의 신을 대상으로 하는 기복행위가 사라졌지만, 東醫寶鑑으로 대표되는 宮中醫學이 바뀐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조선시대 왕실의 출산풍속에서는 신분제의 특징이 현저하게 드러났다. 왕비와 후궁의 신분적 격차는 산실청과 호산청의 차이로 드러났다. 이는 조선시대의 처첩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생자의 경우에도 원자, 대군, 공주, 군, 옹주에 따라 그 대우가 현저하게 달라졌다. 물론 이것은 조선시대의 長子相續制와 嫡庶制度의 반영이었다.
Abstract
A Study on Court Childbirth Customs And Court Medicine in Chosun Dynas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