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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濟州 戶籍中草에 등재된 戶의 경제적 성격 - 濟州島 大靜縣 沙溪里의 사례를 중심으로 -

Household's economic feature shown in Hojeokjungcho of Jeju in the lat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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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연구는 1894년 濟州 大靜縣 沙溪里의 戶籍中草에 등재된 戶의 성격을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하여 여기에서는 1920년경에 작성된 『沙溪里民籍簿』와 『沙溪里地稅名寄帳』을 활용하였다. 분석의 결과 1894년 사계리 호적중초에 등재된 호들의 경제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호적중초에 원호로 등재된 가호들은 그렇지 못한 가호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호적중초에 등재된 다수의 원호들은 둘 이상의 가호가 하나의 원호로 등재된 것이었으며, 이 경우 경제적 의존에 근거한 수직적 관계보다는 독립적인 경제력을 소유한 가호들이 혈연을 매개로 결합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셋째, 둘 이상의 가호가 하나의 원호로 편제되어 등재되는 경우에 있어, 편제는 경제력을 균등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불균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연구의 결과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19세기 후반 제주지역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제주지역에서 진행된 부세수취와 그에 대한 민과 관의 상호작용에 의한 역사적 결과물이었다.

Abstract

This study is to examine household recorded in Jejudo Daejeonghyun Sagyeri Hojeokjungcho (census register) in 1894 from an economic aspect. Sagyeri Minjeokbu(household register) and Sagyeri Jisemyeonggijang(register of land-taxpayers) around 1920 are made the use of in this job. The household's economic feature i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Wonho(household of census registers) is disposed to be superior to non-Wonho in economics. Second, most of Wonho on the same record in Hojeokjungcho are composed of families related by birth. In this case, each family earns their own living. Third, the union of families deepened economic discrimination of Wonhos. This result would rather represent the specific situation of Jeju in the 19th century than that of Chosun overall. It was the creature of the day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over taxation of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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