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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紅牌의 양식과 특징- 「장량수홍패」를 중심으로 -

The forms and features of Hongpae in Kory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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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현재 고려시대의 홍패는 전체 6건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 「장량수홍패」의 양식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는 송의 勅牒을 도입하여 운영한 문서였다. 勅牒은 당에서 왕명으로 사용된 문서로서, 과거 합격증으로 이용된 것은 송대였고, 고려는 이러한 송의 勅牒을 도입하여 홍패로 운영하였다. 「장량수홍패」는 앞부분이 破落되기는 하였으나 북송대 과거 합격증인 「유하칙첩」과 비교해보면 기본적으로 같은 양식이었다. 다만 고려에서 당의 勅書 대신 詔書가 사용되고 조서는 敎書와 상통하게 운영되는 배경 속에서 「장량수홍패」에는 ‘勅’ 대신 ‘敎’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는 고려의 ‘勅牒’이 당송의 것에 비해 문서적 권위가 낮았음을 의미한다. 합격을 인정하는 용어가 ‘宜賜’가 아닌 ‘可’로 표기된 것도 비슷한 배경에서 나왔다. 발급 날짜와 문서 종류는 ‘연호, 연월일, 牒’으로, 담당 관리는 ‘관직, 姓’으로 되어 두 문서의 양식이 거의 같았다. 그러므로 「장량수홍패」는 북송의 과거 합격증인 勅牒을 도입한 것이 분명하다. 「장량수홍패」가 발급된 시점인 남송대의 과거 합격증인 「방봉진칙첩」을 보면, 발급자가 尙書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유하칙첩」과 양식이 같다. 송의 勅牒이 발급자가 달라진 것과는 달리, 고려는 성종대에 설립된 중서문하성이 충렬왕대에 僉議府로 개편되기까지 재상의 기구로서 계속 운영되었으므로, 「장량수홍패」의 破落된 앞부분에 기록되었을 발급자는 中書門下省이었을 것이다. 「장량수홍패」는 書體의 측면에서는 남송대 勅牒의 영향도 받았다. 중국 절강성 항주에 소재한 육화탑에 소장되어 있는 남송대의 「상서성칙첩」을 보면, 문서의 담당 관리 부분의 서체가 ‘大字扁寫’ 즉 큰 글자로 납작하게 쓴 글씨인데, 이는 「장량수홍패」의 담당 관리 부분의 서체와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아도 기본적으로 같은 형태이다. 그렇다면 「장량수홍패」의 서체는 남송대 勅牒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장량수홍패」는 예부시 홍패인데, 시험 성적이 예부시 제술과의 채점 방식인 ‘丙科及第’로 되어 있고, 문서에 기록된 ‘貢院’에서 주관하는 시험은 예부시이며, 또한 송에서 殿試에 합격한 인물에게 발급한 勅牒을 고려에서 국자감시 합격자에게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된다. 「장량수홍패」는 「장계홍패」를 비롯한 나머지 5건의 홍패와는 양식상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둘 다 예부시 홍패인데, 그중 후자는 모두 충렬왕 이후에 발급되었다. 당시 원의 간섭으로 원에서 사용하고 있던 勅牒과 같은 문서를 고려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홍패 운영에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다만 문서 양식은 인사 선발권이 국왕의 권한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경향은 조선의 紅牌에서 더 심화되어 홍패는 王旨, 敎旨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Abstract

This paper is to study about the forms and features of hongpae in Koryo dynasty. We have six cases of hongpae from Koryo Dynasty, and especially Jangryangsuhongpae(張良守紅牌) was a document which was introduced into Koryo from Song. It was called chikcheop(勅牒) and utilized a certificate of success to state examination in Song. Jangryangsuhongpae was similar form compared to yuhachikcheop(劉嘏勅牒) which was a certificate of success to state examination in North Song. The date of issuance and document type were 'era, year, month, date, cheop(牒)' and the responsible officials were 'offices, last name'. These were almost the same form between two documents. But Koryo used Kyo(敎) instead of the term Chik(勅), so the authority of Koryo chikcheop was lower than the Dang-Song's. In the similar background, they used 'permit'(可) instead of 'ought to give'(宜賜) which was the term assent to pass an exam. Bangbongjinchikcheop(方逢辰勅牒) was a document used in South Song, and was the same form compared to Yuhachikcheop. But the responsible office was not jungseomunwha but sangseosung. In contrast, the responsible office was constantly jungseomunwhasung until king chungryeol in Koryo, so jangryangsuhongpae could be recorded jungseomunwhasung with the responsible office. But the style of handwriting of Jangryangsuhongpae was affected by chikcheop in South Song. The handwriting of responsible officials of sangseoseongchikcheop in South Song,was big and flat, and Jangryangsuhongpae was almost the same shape. Jangryangsuhongpae was a Yebu-exam hongpae. Because the byeonggoageubje(丙科及第)was a Yebu-exam score and gongwon(貢院) recorded in the document was a office organized Yebu-exam. Jangryangsuhongpae and Janggyehongpae were all Yebu-exam hongpae, but the forms were different. The latter of which was issued after king chungryeol. At that time, The politics of Koryo was interfered by Yuan. As chikcheop used in Yuan couldn't utilize in Koryo, so the form of hongpae changed. Just the document form emphasized the king's power to pick out officials, this trend was more intensive in Chosun dynasty and hongpae was settled in the form wangji(王旨) or kyoji(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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