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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전반 戶籍자료를 통해 본 귀화 野人의 조선에서의 생활 양상 -蔚山戶籍(1609)과 海南戶籍(1639)의 사례 분석-

The Modes of Lives of Naturalized Jurchens Appeared in Joseon's Census Registers in the First Half of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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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논문은 조선으로 귀화한 북방 野人(女眞族)의 후손들이 조선 땅에서 어떻게 생활하였는가를 17세기 전반의 경상도 蔚山(1609년)과 전라도 海南(1639년)의 두 戶籍大帳을 통해 살펴본 것이다. 연구 결과로 나타난 주요 양상들을 보면 첫째, 귀화 야인(후손)들은 호적 자료에서 모두 ‘向化’로 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관을 ‘黑龍江’ · ‘大元(大原)’ 등으로 기재함으로써 이들의 출자가 야인임을 판별할 수 있었다. 둘째, 귀화 야인(후손)들은 주로 沿海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漁業에 생계를 의존하였음을 엿볼 수 있었으며, 자기들끼리 集居하는 이른바 ‘向化村’의 형성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셋째, 귀화 야인(후손)들은 조선인과의 통혼보다 자기들끼리 內婚하는 경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넷째, 친인척 관계로 연결된 귀화 야인(후손)들이 集居하는 일종의 ‘同族村’이 소규모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였다. 다섯째, 귀화 야인(후손)들 중의 일부는 임진왜란 때 軍功을 세워 武官職을 受職하기도 하였다. 끝으로, 귀화 야인(후손)들의 경제 형편은 일반 조선 백성보다 크게 나을 게 없었다. 결과적으로, 귀화 야인 및 그 후손들이 조선인으로 쉽게 同化되지 못하게 한 조선 사회 및 귀화 야인(후손) 양측 모두의 강한 폐쇄성을 엿볼 수 있었다

Abstract

This thesis is to find how descendants of the northern Jurchens led their lives in the Joseon in the first half of 17th century through two records of the census resister, which were one(of 1609) in Ulsan(蔚山), Gyeonsang Province(慶尙道) and the other(of 1639) in Haenam(海南), Jeolla Province(全羅道). The findings, first of all, show that the naturalized Jurchens and their descendants were registered as people of Hyangwha(‘向化’ naturalization) in the census resters and they were titled as family origins of Heukryongkang(‘黑龍江’ the Amur River) or Daewon(‘大元’), which made them as distinguishable Jurchens. Second, Jurchens and their descendants mainly lived along the coast and made livings by fishery, and they were likely to form a tribal village of the naturalization by themselves. Third, they had a tendency of endogamy rather than marriage to Joseon's people. Fourth, the naturalized Jurchens and their descendants usually established the cognate village caused by endogamy in a small scale. Fifth, some of them had once performed meritorious deed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held military official positions. Sixth, their economic condition was not off in comparison with people in Joseon. As a result, Jurchens and their descendants failed to assimilate themselves with Joseon's people, so both they and Joseon's people did not open up to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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