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民村 지역 주민들의 혼인 연망과 종족화 양상 - 東萊府『沙上面 戶籍中草』의 사례 분석 -
The Aspect of Marriage and Confucian Linage Creation of Commons Village Residents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in Korea - Case Analysis of Sasangmyun(沙上面)’s Reports which were Needed to Make Dongraeboo(東萊府) Census Registration in 18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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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현존하는 東萊府 『沙上面 戶籍中草』(1891)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19세기 말 민촌 지역 주민들의 혼인 연망과 종족화 양상을 파악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호적자료가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한계를 딛고 실상에 접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먼저 19세기 말에 작성된 동래부 『사상면 호적중초』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사상면 거주 친족 집단들의 사회 지위를 구분하고 이들의 혼인 연망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출신 친족 집단의 사회 지위가 비슷한 이들끼리 결혼하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났다. 또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는 소수의 사례들을 통해 혼인 상대의 선택에서 사회 지위 뿐 아니라 경제력이나 외모와 성품과 같은 또 다른 요소들도 작용하였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서 혼인 연망을 거주지를 기준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혼인 사례의 과반수가 같은 동리나 그 인근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마을 외혼의 경우도 혼인 상대의 거주지가 자신의 마을과 가까울수록 혼인 사례가 많고 먼 곳일수록 적었다. 그러나 경지와 주민의 수가 많고 읍치와도 가장 가까웠던 周禮里에서는, 이와 달리, 가장 멀리 떨어진 동리에 거주하는 가문과 혼인하는 사례도 상당수 있었다. 동래부 사상면의 거의 모든 친족 집단들이 대체로 자신의 동리 안에서 혼인하거나 동리를 벗어나더라도 사상면을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사회 지위나 경제력 등이 높은 몇몇 집안은 면의 경계를 벗어나서 혼인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사회 지위가 혼인에 크게 작용하였지만 예외도 있었기 때문에 같은 동리에 사는 집안들은 서로 처가나 외가 등의 인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면의 경계를 넘어서 혼인하는 몇몇 집안도 존재했기 때문에 사상면 지역 사회가 동래부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실 건립과 족보의 간행 및 수록 실태를 통해 세거 성씨들의 종족화 경향을 조사해 보았는데 현재 사상 지역에 존재하는 재실들은 모두 해방 이후 특히 한국 경제가 급속히 발전한 1960년대 이후부터 2000년 사이에 건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와 아울러 거의 모든 집안들이 1970년대 이후에 비로소 족보에 수록되거나 족보를 간행하였다. 이러한 현상에서 예외가 되는 일부 가문들은 사상 지역 밖의 친족 집단과 일찍부터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었는데 이들의 족보 간행 시기도 19세기 중엽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았다. 이렇듯 상민 계층의 종족화는 19세기 중엽이후부터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를 거쳐 최근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e aim of this paper is to find out the actual condition of marriage and Confucian linage creation of commons village residents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in Korea. This aim was pursued by case analysis of Sasangmyun(沙上面)’s reports which were needed to make Dongraeboo(東萊府) census registration in 1891. And this is a trial to grasp the reality of it’s social conditions by incorrect and insufficient informations of the census registration which was made in premodern society of Korea. This research found out follows. The Sasangmyun’s residents were mostly married with the member of family similar with themselves in social position. The half of Sasangmyun’s residents was married with the one of their neighborhoods in the town which was called Lie(里) and the others was mostly married with the one of Sasangmyun’s inhabitants. The Confucian lineage in Sasangmyun was created from the midterm of’1800 to nowa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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