戶籍과 族譜의 자료적 특성과 연구방법 ― 17C~20C 초 丹城地域 培養洞 陜川李氏들을 추적하며
Data Features and Research Method of Household Registers and Genealogies by Tracking Hapcheon Lee Family Members in Tanseong in the 17-20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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戶籍은 정부의 행・재정적 필요에 따라 정기적으로 호구조사를 실시할 당시의 거주 상황을 기재하고 있다. 族譜는 편찬 당시의 후손들이 특정 선조로부터 이어지는 부계혈연 및 혼인 관계의 신분적 정통성을 확인한 기록이다. 이 두 자료로터 17~20세기 초에 이르는 주민의 계보적 파악을 통해 ‘同姓村落’의 실상을 관찰하고자 한다. 동성촌락은 지역공동체와 혈연공동체의 서로 다른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호적과 족보의 자료적 특성을 대비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연구소재이다.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과 식민지호적 작성으로 20세기 초의 촌락 위치와 垈地所有者 및 호주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으로부터 조선왕조 및 대한제국기 호적의 호구 등재 상황과 족보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면, 호구의 거주 이동, 부계혈연 내부의 신분적인 배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호적과 족보의 선택적 기재는 면리행정구획 내의 촌락과 주민들 가운데 주도적 세력이 어느 마을의 어떠한 성씨 사람들인지 짐작하게 한다. 처음으로 이주해온 선조로부터 여러 세대에 걸쳐 그 후손들이 살아온 世居地에는 동일 성씨의 부계친족들이 높은 비율로 거주하는 ‘동성촌락’이 형성된다. 그러나 17~20세기 초를 통하여 그들 가운데 많은 가계들이 매우 빈번하게 그곳을 떠나거나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거지인 동성촌락으로부터 거주를 이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지역공동체 내부의 부계친족 사이의 신분적 갈등과 혼인이 주된 원인이다. 그와 동시에 선택적인 부계친족 사이의 유대관계를 긴밀히 하려는 노력이 혈연조직이나 족보의 편찬으로 이어졌다.
Abstract
Joseon government had surveyed residence of each household and recorded on household registers regularly by governmental needs. Each family had compiled their own genealogies indicating paternal and maternal descent to secure blood legitimacy. This study observe the true nature of the "same family-name villages" from the 17th to the early 20th centuries by reconstituting pedigree of residents in the Tanseong prefecture. Same family name villages were communities which based on regional relation and blood relation, and were excellent subject to prove data features of household registers and genealogies. The Land Survey Project and household registers under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in 1910s make us to identify landowners, households, and location of villages. By tracking family lines and households retrospectively on the household registers and genealogies, I find migration patterns of households and social exclusiveness within patrilineal kin members. Selective recording of households on registers and genealogies let us to suppose which village and family was the dominant group among residents of the Tanseong prefecture. A village which the progenitor moved in and descendants resided by generations, transformed as "same family-name village" relatively easy. However, family members moved in and out of their residence frequently after the 17th century. The main reasons of frequent migration from the "same family-name village" were marriage relationship and disharmony between family me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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