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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특징을 통해 본 전남지역 전방후원분의 피장자

A Study on Characteristics o f Keyhole-shaped Tomb in Jeonnam Region Through Structural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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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한국에도 전방후원분이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한일 양국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한때 진위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기도 하였지만,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이어지면서 한국에도 전방후원분이 자리하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로 입증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그러한 전방후원분 피장자의 성격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크게 보면 在地首長說, 倭人 說, 倭系百濟官僚說 등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방후원분을 남겼다고 보는 것은 동일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확인된 전방후원분은 전남지역의 외곽에 자리하면서, 대체로 1기씩 자리하고 있고, 대단히 간략하게 축조된 것이 특징이다. 즉 段築도 없고, 즙석시설도 희미하고, 허리부의 제사시설(造出部)도 없다. 그런 점에서 전남지역 전방후원분은 그것을 남긴 사람들이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아니라 오히려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큐슈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더 이상 거기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됨에 따라 전남지역으로건너와 남긴 것이 전남지역 전방후원분 이라고 판단된다. 이들은 정착 후 얼마지나지 않아 백제문화에 동화됨으로써 전방후원분도 사라지게 되었다.

Abstract

In 1983, a claim was made that a keyhole-shaped tomb was located in Korea, which raised great repercussion in both Korea and Japan. At one point, there was a fierce dispute over the truth; however, as surface surveys and excavation investigations continued, it became an undeniable fact that the keyhole-shaped tomb was located in Korea. Accordingly, various discussions have been conducted about the character of the person buried in the tomb. As a result, it can be summarized as the theory of the native tomb separated from the Baekje Dynasty, the theory of Japan tomb, and the theory of Japan bureaucrat tomb. As if there were slight differences, t heir opinions conformed to t he theory that the tomb was built to show off own power. However, the tomb confirmed so far is located on the outer boundary of the Jeonnam region, usually one at a time, and are characterized as being simply constructed. In other words, there is no stepped embankment; the bond stone facility on the tomb slope is faint; and there is no sacrificial facility at the tomb waist area. In this regard, I believe that the tomb in the Jeonnam region was not built by the people who left them to demonstrate their power, but is on the verge of disappearing. In other words, as people who used to live in Kyushu could no longer live there, it is judged that what they left behind after moving to the Jeonnam area is the keyhole-shaped tomb in the Jeonnam region. Shortly after they settled down, they were assimilated into Baekje culture, and the tomb also disappe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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