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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강(巴江) 김두남(金斗南)과 『양금신보』

Kim Tu-nam and Yanggǔm sin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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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음악학

초록

본고에서는 『양금신보』를 간행한 파강(巴江) 김두남(金斗南, 1559~1647)에 관한 자료들을 가능한 폭 넓게 수집하여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의 생애와 교유관계를 정리하는 한편, 그가 남긴 『양금신보』를 다시 살펴보면서 거문고보 발행인으로서의 역할과 소통에 대해 살펴보았다. 김두남은 여러 관직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종2품)에 올랐고, 사후에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된 인물로, 젊은 나이부터 사장(詞場)에 나가 일대의 이름난 이들과 교유하였으며, 성예(聲譽)가 높았다. 임실 현감 시절에는 이웃 남원에 있는 양덕수를 임실로 데려와 『태평유보』(太平遺譜)를 만들도록 권유하였는데, 당시 임실현의 재력이 달려서 옛 악보에 있는 모든 음악을 다 수록할 수가 없었기에 양덕수 악사의 의견을 반영하여 옛 악보에 있는 곡 중 느린 곡 위주로 7~8곡만을 선택하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태평유보』를 바탕으로 목판본 『양금신보』가 간행되었다. 『양금신보』의 첫머리는 금아부(琴雅部)·현금향부(玄琴雅部) 순으로 실려 있는데, 이러한 체제는 김두남이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음악적 지식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은 『양금신보』 서(序)에 유장경(劉長卿)의 <탄금(彈琴)>이란 시를 인용한 점, 유몽인이 김두남과 상음(賞音, 혹은 知音)으로 교유한 사이라고 언급한 점 그리고 선조 21년(1588, 戊子) 한양에서 있었던 대규모의 시위에서 명문가의 자제 30여 명과 함께 대표로 <동동[登登曲]>을 불렀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그였기에 임진왜란 후 거문고 음악 전승의 앞날을 우려하여 양덕수 악사에게 『태평유보』를 만들도록 권유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양금신보』를 간행할 수 있었다. 김두남은 『양금신보』를 목판본으로 제작하여 여러 음악 애호가들과 소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양금신보』가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양덕수는 유명 인사가 되었으나 발행인 김두남의 이름은 거문고 음악 애호가들에게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이것은 ‘임실현감 김두남 서(任實縣監 金斗南 序)’가 기록된 『양금신보』의 마지막 장이 인쇄와 전사과정에서 누락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Abstract

In this paper, the studies on Kim Tu-nam 金斗南 (his pen name: P'a-gang 巴江), the publisher of Yanggǔm sinbo 『梁琴新譜』 (Yang's New Kŏmun'go Manuscript) is presented, based on his biography, relationship with contemporaries, and his role as the publisher of Yanggǔm sinbo, the details of which have not been reported so far. As a civil official, Kim Tu-Nam was promoted up to Tongchi chungch'u pusa 同知中樞府事 (2nd rank in civil officials) after taking up several government posts, and posthumously conferred the minister of finance department. He enjoyed being associating with contemporary celebrities in the poetry contests and had profound knowledge of music. As a governor of Imsil 任實 County, he invited Yang Tǒk-su 梁德壽, a court musician from the neighboring Namwǒn 南原 for the compilation of T'aep'yǒng yubo 『太平遺譜』 in which only 7~8 slow scores were included, being selectively excerpted among old scores following the opinion of Yang Tǒk-su. Such a limited selection was due to the financial difficulties of Imsil Count, which finally became the kǒmun'go 거문고 i.e. hyŏn'gŭm 玄琴 melodies of Yanggǔm sinbo. The introduction of Yanggǔm sinbo contains Kǔmabu 琴雅部 and Hyǒn'gǔm hyangbu 玄琴鄕部 which seems to be the composition of Kim Tu-nam. Kim Tu-nam's profound knowledge of music is partly seen in the preface of Yanggǔm sinbo, where t'an'gǔm 彈琴, a poet of Yu Chang-gyŏng 劉長卿 (Liu Chang-qing in Chinese) is quoted, and confirmed by the facts that Yu Mong-in 柳夢寅 commented on his intimidate relation with Kim Tu-nam and also that Kim Tu-nam representatively recited Tŭngdŭng piece 登登曲 together with 30 youths from distinguished families in the national poetry contest held in 1588 (the 21st year of King Sǒnjo 宣祖). Therefore, it seems he was motivated and qualified enough to publish Yanggǔm sinbo in cooperation with Yang Tǒk-su, caring about the tradition of musical legacy aft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Kim Tu-nam published Yanggǔm sinbo based on wood block printing for distribution among contemporary lovers of music expecting close companionship with them, however, Yang Tǒk-su became famous as the popularization of Yanggǔm sinbo while the name of Kim Tu-nam was almost forgotten and never mentioned publicly. The reason seems to be the accidental omission of the final page of Yanggǔm sinbo in the process of printing or transcribing, where the publisher's name is wr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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