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세기 한양사족의금보 편찬과 음악적 소통
16~17th Centuries' Geumbo(琴譜) Compilation by Noble Families in Hanyang(漢陽士族) and Musical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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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에서는 민간에 낱장으로 돌아다니는 단순한 형태의 악보가 아니라 악보집 형태의 금보가 처음 출현하는 16~17세기의 금보를 대상으로 하여, 편찬자의 출신 및 편찬 배경에서 보이는 동질의 성격과 금보를 통한 음악적 소통 양상을 논하였다. 16~17세기 금보 편찬자들에게 보이는 특징은 첫째, 금보를 편찬한 문인애호가들의 주거지가 ‘京’ 즉 한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금보 편찬이 한양사족의 문화 활동에 속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본인이 장악원 관리 출신이거나 가계에 장악원 관리 출신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장악원의 물적․인적 자원을 금보 편찬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 셋째, 지방관으로서 관의 인적․물적 자원을 이용하여 목판본 금보를 만든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민간에서의 금보 유통을 활발하게 하였다. 넷째, 금보의 유통과 확산을 통해서 음악적 소통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새로운 금보의 탄생과 속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Abstract
This paper is about 16~17th centuries’ Geumbo (a score of Geomungo, 琴譜) firstly emerged as a form of scores not as just simple ones scattered around, and it is discussed the same natures through the origin and background of compilers and the aspects of musical communication through Geumbo. The feature of Geumbo compilers in 16~17th centuries is that firstly, residential areas of literary people who compiled Geumbo were centered to Hanyang (a capital city, 漢陽). This means Geumbo compilation belongs to cultural activities of noble families in Hanyang. Secondly, a compiler himself was an administrator of Jangakwon (national music agency, 掌樂院) or his family member was an administrator of Jangakwon. This was an advantage to use materials and human resources for compiling Geumbo. For third, sometimes a leader of a province used material and human resources to make Geumbo printed from a wood block. This brought an active circulation of Geumbo among people. Fourth, communication through music was made through the circulation and spread of Geumbo, which motivated the birth of Geumbo and the affirmative acceptance of Sokak(俗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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