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帝國期 觱篥差備에 관한 연구 -『의궤』를 중심으로-
A Study on P'iri ch'abi during the Taehan Empire - Focused on Ŭigwe, the Royal Protocols of the Chosŏn Dynas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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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1901년 『진찬의궤』(進饌儀軌)ㆍ『진연의궤(進宴儀軌)』와 1902년 『진연의궤』 2종 총 4종의 의궤(儀軌)에 기록되어 있는 피리차비(觱篥差備)를 살펴 본 것으로 그들의 이름 및 역할과 활동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의궤를 바탕으로 검토한 결과 피리차비는 1901년 5월부터 1902년 11월까지 지속적으로 편성되어 연주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1901년 5월 18명, 1901년 7월 19명, 1902년 4월 19명, 11월 20명이 있었다. 이들은 전정헌가(殿庭軒架)와 전상(殿上)에 편성되어 연주하였으며, 연주횟수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가 났다. 피리차비(觱篥差備)들이 연주한 곡목은 대부분 아명(雅名)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종합하여 보면 여민락만(與民樂慢)ㆍ여민락령(與民樂令)ㆍ보허자령(步虛子令)ㆍ보살만(菩薩蠻)ㆍ원무곡(原舞曲)ㆍ향당교주(鄕唐交奏)ㆍ낙양춘(洛陽春)으로 각 잔치 때 마다 적게는 6곡 많게는 7곡이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민락만(與民樂慢)은 1901년 7월 진연(進宴)과 1902년 4월과 11월에 외진연(外進宴)시 헌가(軒架)에서 제조(提調)가 황제(皇帝)에게 주기(酒器)를 올릴 때 연주되었으며, 여민락령(與民樂令)은 4차례의 진찬(進饌)과 진연에서 모두 연주되었다. 진찬에서 연주시 황제의 거동(擧動)이나 사배례(四拜禮) 또는 태후(太后)의 출궁악(出宮樂)에서 연주되었으며, 진연에서는 황제의 출(出)ㆍ환궁(還宮)과 시접을 올릴 때 헌가에서 연주되었다. 보허자령(步虛子令)은 네차례 모두 연주되었는데, 황태자의 출ㆍ환궁과 사배례, 황태자에게 시접을 올릴 때 연주되었다. 낙양춘(洛陽春)은 세차례 진연의 내진연(內進宴)에서는 왕이 배위(拜位)에 나가거나 진연소(進宴所)에서 나갈 때 연주되었다. 그 밖의 경우는 모두 사배례에서 연주하였는데, 명부(命婦)와 진찬소(進饌所) 당상(堂上) 낭청(郎廳) 또는 진연청(進宴廳) 당상 낭청의 사배에 연주되었다. 보살만(菩薩蠻)과 원무곡(原舞曲)은 정재(呈才)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었다. 향당교주(鄕唐交奏)는 이상의 절차 외에 주악(奏樂)과 같이 정재가 연행되지 않는 나머지 절차에서 모두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피리차비들이 연주한 횟수별로 살펴보면 4번의 연향(宴享)에서 1번~4번까지 연주횟수와 활동에서 차이가 났다. 1번 연주에 참여한 차비(差備)는 8명으로 이 중에서 4명은 편종차비(編鍾差備), 담지(擔持), 서기(書記)로 활동하였다. 2번 참여한 차비는 3명으로 모두 교방사(敎坊司) 악공 출신으로 피리차비로만 활동하였다. 3번 연주에 참석한 차비들은 6명으로 2명이 각각 퉁소차비(洞簫差備)와 대금차비(大笒差備)로 활동하였으며,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장악원(掌樂院) 출신의 악공이었다. 4번 모두 참여한 차비는 11명으로 2명이 정재무동(呈才舞童) 출신이며, 1명은 가차비(歌差備), 1명은 당적차비(唐笛差備), 1명은 장구차비(杖鼓差備)로 활동하였다. 이 중 7명은 교방사(敎坊司) 설립이전 이미 장악원(掌樂院)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으로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피리차비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재까지 피리차비(觱篥差備)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된 것은 없었으며, 피리차비의 전승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연구는 의궤(儀軌)를 중심으로 피리차비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되며, 앞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p'iri ch'abi 觱篥差備 written in total four kinds of ŭigwe 儀軌, the royal protocols of the Chosŏn 朝鮮 Dynasty including the Chinch'an ŭigwe 『進饌儀軌』 and Chinyŏn ŭigwe 『進宴儀軌』 in 1901 and two kinds of Chinyŏn ŭigwe in 1902, and their names, roles and activities. Review based on ŭigwe showed that p'iri ch'abi was formed and performed constantly from May 1901 to November 1902. There were 18 players in May, 1901, 19 in July, 1901, 19 in April, 1902 and 20 in November, 1902. They belonged to chŏnjŏng hŏnga 殿庭軒架 chŏnsang 殿上 to play and the frequency of their performance was a little different. Most tunes that p'iri ch'abi played are recorded by nick names. Generally they are Yŏmillak man 與民樂慢, Yŏmillak ryŏng 與民樂令, Pohŏja 步虛子, Palsang man 發祥慢, Wŏnmugok 原舞曲, Hyangdang kyoju 鄕唐交奏 and Nagyangch'un 洛陽春 of which 6 to 7 tunes were played at each feast. Yŏmillak man 與民樂慢 was played when chejo 提調 offered chugi to the emperor in hŏnga 軒架, in case of chinyŏn 進宴 in July, 1901 and Woejinyŏn 外進宴 in April and November in 1902, while Yŏmillak ryŏng 與民樂令, was played in all the four times of chinch'an 進饌 and chinyŏn 進宴. It was played in chinch'an, in Emperor's movement, in Sabaerye 四拜禮 or in Empress Dowager's Ch'ulgungak 出宮樂, and played in chinyŏn in Emperor's coming in and out of the palace, in offering Sijŏp, and in hŏnga 軒架. Pohŏja ryŏng 步虛子令 was played all in four times in Emperor's coming in and out of the palace, in Sabaerye, in offering Sijŏp to emperor. Nakyangch'un was played when the King comes out to paewi 拜位 or chinyŏn site in cases of Naejinyŏn 內進宴 of three times of chinyŏn. In all the other cases, it was played in Sabaerye, in Myŏngbu 命婦 and Chinch'anso 進饌所 tangsang 堂上 nangch'ŏng 郎廳 or in Sabae 四拜 of Chinyŏnch'ŏng 進宴廳 tangsang nangch'ŏng. Palsang man 發祥慢 and Wonmugok 原舞曲 were played as accompaniment for court dance called chŏngjae 呈才. Hyangdang kyoju 鄕唐交奏 was played in all the processes other than above process, in process with no chŏngjae dance performed together with musical performance. As for the frequency of performance by p'iri ch'abi 觱篥差備 in No. 4 yŏnhyang 宴享, the frequency of performance and activity of No. 1 to No. 4 were different. Ch'abi 差備 who took part in No. 1 performance were eight of which four were active as p'yŏnjong ch'abi 編鍾差備, tamji 擔持 and sŏgi 書記. All three ch'abi who took part in No. 2 performance were from court musician of Kyobangsa 敎坊司 (Royal Music Institute of the Taehan Empire) and were active only as p'iri ch'abi. Ch'abi who took part in No. 3 performance were six of which two were active as t'ungso ch'abi 洞簫差備 and taegŭm ch'abi 大笒差備 respectively, and all of them except for one were from court musician of Changagwŏn 掌樂院 (Royal Music Institute of the Chosŏn Dynasty). ch'abi who took part in all of the four times of performance were eleven of which two were from chŏngjae mudong 呈才舞童, one from ka ch'abi 歌差備, one from tangjŏk ch'abi 唐笛差備 and one from changgu ch'abi 杖鼓差備. Seven of them were already active in Changagwŏn before Kyobangsa was established. It has been investigation of p'iri ch'abi in the Korean Empire. So far there hasn't been any full-scale research of p'iri ch'abi nor tradition of it. This study might be a starting point of researching p'iri ch'abi focusing on ŭigwe 儀軌 and lots of research shall be follo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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