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 연향에서 정재 준비와 공연의 변모
The Changes on the Preparation and Performance of Chŏngjae during the Imper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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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종대 대한제국기 이전과 이후에 정재를 준비하는 과정과 정재 공연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를 의궤와 홀기 기록을 통해 살펴보았다. 대한제국기에에 연향 담당기관인 진찬소나 진연청은 교방사나 장례원에 설치되었다. 이는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기에 종친부에 설치되거나, 고종의 친정 이후 군영에 설치되었던 경향과 다르다. 예악이 중심인 연향을 효율적으로 준비하려는 목적이 앞선 듯하다. 연향을 담당하는 임시 관원인 당상과 낭청 수는 대한제국시기에 증가되지 않았다. 또한 연향을 준비하는 기간은 임인년(1902) 11월 진연이 116일로 고종대를 통틀어 가장 길게 준비되었으나, 나머지는 황제국 이전과 비슷했다. 정재 여령의 선발은 대한제국시기에 대체로 의녀와 침선비의 비중이 높았으나, 선상기도 여전이 정재의 한 역할을 담당했다. 신축년 진연과 임인년 4월 및 11월 진연에서도 선상기가 정재 공연에 참여했다. 따라서 대한제국기에 선상기가 정재를 담당하지 않았다는 기존의 논의는 사실과 다르다. 대한제국기 정재의 연습 방향은 이전의 것을 쓰는 대원칙 아래 창사의 연습을 중시했는데, 조선후기를 계승한 측면이 강하다. 습의는 예외없이 외연보다 내연을 위한 습의가 많았다. 그러나 내연의 경우 고종황제 즉위 이전보다 황제 즉위 이후에 습의가 한 차례씩 많아졌다. 정재 의상을 새로 만드는 경향은 대한제국 시기에 와서도 지속되었으며, 정재여령의 복식비 지출도 일부 증대되었다. 연향의 비용을 대한제국 이전에는 왕실의 권력기반이 되는 부서이자 진찬소가 설치된 곳에서 부담했다면, 대한제국 이후에는 대부분의 비용을 탁지부에서 지불했다는 특징을 보인다. 정재의 외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살펴보면 형식이 확대되는 측면이 있었다. 첫째로, 공연종목이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후기에 외연보다 내연의 정재공연이 많았는데 유독 임인년 11월의 연향에서는 내연보다 외연에서 더욱 많은 정재가 공연되기도 했다. 둘째로, 정재 여령과 무동의 수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셋째로, 정재별 구성인원이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정재의 내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첫째, 정재악장에서 큰 변화는 없었다. 공연자나 연향의 대상의 격에 맞게 글자를 변화시키는 현상이 있었지만 이는 헌종 이후의 전례를 따르는 것이다. 다만 황제의 격에 맞는 글자의 변화는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둘째, 춤사위에서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결국, 정재는 대한제국기에 황제의 위상에 걸맞도록 공연 종목과 공연자를 증가시키는 형식적 확대를 시도했고, 내용적으로는 황제의 격에 맞는 정재악장의 부분적 변화를 꾀한 것이다.
Abstract
The aim of this paper is to figure out the change of court dance called chŏngjae 呈才 in the Imperial Korea 大韓帝國 period's (1897-1907) the court banquet in terms of preparation and results of performance. The object of this study is ŭigwe 儀軌 and Chŏngjae mudo holgi 『呈才舞圖笏記』 in the reign of Emperor Kojong 高宗皇帝. The Emperor Kojong had held a Court banquet in 1901 and 1902 to strengthen imperial prestige thru Confucian ceremony. Chinch'anso 進饌所 or Chinyŏnch'ŏng 進宴廳, the bodies which administers the court banquet had been installed in Kyobangsa 敎坊司 or Changnyewŏn 掌禮院. The number of government official had not much been increased during Imperial Korea period. Also the preparation time for the court banquet held in 1902 was the longest one preparing the court banquet, but other cases were similar with before Imperial Korea period. The the court banquet had been prepared similarly as cases in the late Chosŏn dynasty because the body administering the court banquet had tent to following the precedents. The portion of ŭinyŏ 醫女 and ch'imsŏnbi 針線婢 was high in the election of female dancers known as chŏngjae yŏryŏng 呈才女伶 in the Imperial Korea. Also the sŏnsangi 選上妓 had been playing a role in chŏngjae. 16 sŏnsangi had played chŏngjae in 1901, 31 in April of 1892, and 37 in November of 1902. They were mostly from South P'yŏngan province and South Kyŏngsang province, and it was in succession of the trend of the late Chosŏn dynasty. The number of rehearsal for naeyŏn 內宴 in the Imperial Korea the court banquet had been increased by one after the Emperor Kojong ascended the throne. The expense of clothes for chŏngjae yŏryŏng had been increased also. The cost for the court banquet had been payed by the body in Chinch'anso, and it had been payed by T'akchibu 度支部 later than in the Emperor Kojong. From the external view point of chŏngjae, at first, it showed a expanding tendency of the performance event. Secondly, the number of chŏngjae yŏryŏng and boy dancers called mudong 舞童 had tended to be increased also. From the internal view point, at first, there was some change in chŏngjae akchang 呈才樂章. The change for words to be harmonized with imperial prestige had happened in this period. It had been intended to escalate imperial authority by changing a part of akchang. Secondly, display of dancing was almost same as earlier of in the reign of Emperor Ko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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